“보고 싶은 명품무대… 한국의 스칼라 극장 만들 것”
입력 2011-05-22 17:47
본고장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기획·감독 박수지 수지오페라단장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 마리엘라 데비아가 한국에 왔다. 온 것만 해도 화제가 될 만한데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을 맡아 전막 공연한단다. 이리나 드브롭스카야와 나탈리아 로만도 왔다. 27∼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라 트라비아타’ 공연 얘기다.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 역은 테너 살바토레 코르델라와 마리오 말라니니가 맡았다. 이 공연을 기획·감독한 수지오페라단의 박수지 단장을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라 트라비아타’는 ‘프리미엄 오페라’=“한번 하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박 단장의 오페라단은 ‘프리미엄 오페라’를 표방하고 있다. 무대·의상·음악·배우의 연기력 등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유명 아티스트 위주의 출연진 섭외도 박 단장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한국에서 대가들의 무대를 본다는 게 참 어려워요. ‘누가 온다더라’해서 검색해보면 레퍼토리가 형편없죠. 그래서인지 데비아 등 자기 몫을 하는 가수들의 오페라 전막 공연을 보기 위해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스칼라 극장이라든지 메트로폴리탄, 베로나 등지로요. 그런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물론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데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연극이나 뮤지컬이라면 흥행에 따른 장기공연을 기대할 수 있으나 오페라는 다르다. 하루나 이틀, 길어야 3∼4일 정도 공연이 고작이다. 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박 단장은 “애써 무대를 만들어 짧은 기간만 공연하고 내리는 게 너무 아깝다”며 “수요가 적으니 공급이 계속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프리미엄’과 ‘저변 확대’ 사이=“관객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페라와 뮤지컬이 같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에요. 오페라는 그 나름대로의 뮤지컬일 수밖에 없어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오페라가 조금 더 많은 돈을 주더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정신적인 안정감이라든지, 마음의 양식 같은 보상이 충분히 주어진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요컨대 오페라의 저변 확대를 바란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프리미엄 오페라를 표방한 이상, 티켓 가격이 비싸지는 건 필연이다. 대중화나 시장 확대도 결국엔 요원한 목표가 아닐까. 그러나 박 단장은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오페라를 어쩌다 한 번 보러 온 관객이 만족하고 돌아가야지요. 한 번 오페라를 찾았던 사람이 실망해서 뮤지컬이나 대중음악 쪽으로 가버리지 않게요. 시장을 독식하겠다는 게 아니라, 대중문화와 공존할 수 있는 좋은 무대를 만들어야 오페라 관객도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 잘 만들어야 해요.”
그는 쓸데없는 곳에서 돈이 새기 쉬운 오페라 제작 시스템도 지적했다. 가수나 의상을 섭외할 때에는 기획사가 여러 곳 개입하며 비용이 높아졌고, 심지어 인쇄물을 제작하는 데에도 디자이너가 리베이트를 받았다.
“그 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부대비용을 줄여나갈 계획입니다. 프리미엄 오페라지만 최대한 티켓 가격을 낮추려고 해요.”
문화예술계 전반에 공공연한 초대권 문제도 그의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이 유료티켓을 구입해주셔서 감사했다”며 “음악계 관계자들조차 공공연히 무료 초대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 연말에는 새로운 버전으로 각색한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나비부인’은 지난해에 공연한 적이 있어서 기존의 무대세트를 활용할 수 있거든요. 가격을 많이 낮춰서 오페라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어요.”
라 트라비아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를 원작으로 주세페 베르디가 전곡을 작곡한 오페라다. 파리 사교계의 고급 창녀 비올레타가 귀족 청년 알프레도를 사랑하지만 신분과 처지 때문에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의 반대에 부딪치고, 결국 둘은 이별한다. 알프레도는 뒤늦게 진실을 알고 비올레타를 찾아오지만 비올레타는 병에 걸려 죽는다는 줄거리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