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 4명 11년전 北에 피랍”… ‘흑금성’ 재판서 법정증언 충격
입력 2011-05-20 18:14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겨준 혐의로 기소된 대북 공작원 출신 ‘흑금성’ 박채서씨의 항소심 공판에서 지난 1999년 우리 군의 영관급 장교 4명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관련 증언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된다. 당시는 1차 연평해전이 발생한 해였다.
20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박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전직 북한전문기자 정모씨는 19일 ‘한국의 합동참모본부 중령이 99년 중국 국경에서 납치됐고, 이모 대령이 북한에 체포됐으며 또 다른 이모 대령과 박모 대령이 북한에 납치·체포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변호인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는 당시 언론사에서 이 내용을 취재하다가 보도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해 취재를 중단했다고 덧붙였다.
박씨 변호인은 공판에서 북한이 납치한 우리 측 장교를 통해 2000년대 초반 이미 우리 군의 ‘작전계획 5027’을 입수했고, 2004년에는 이런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작전계획 5027’은 북한의 선제공격과 도발 등 유사시를 대비한 한미연합사의 공동 군 운용 계획으로, 1급 군사기밀이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이에 대해 “납치됐다든지, 4명이라든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안보와 북한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19일 증언한 것으로 알려진) 대부분 내용은 변호인이 얘기한 것이고, 나는 당시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을 뿐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진술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씨를 기소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 단계에서 (영관급 장교 납치)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박씨는 검찰에서 ‘작전계획 5027은 내가 북한에 넘기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넘겼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그러면 넘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박씨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며 “박씨가 자신이 기밀을 누설하지 않았다는 점을 참작해 달라는 차원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대북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박씨는 1998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해고된 뒤 주로 중국에서 사업을 벌여 왔다. 그는 2003년 3월 북한 작전부(현 정찰총국) 공작원으로부터 “남한의 군사정보와 자료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해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군사기밀을 입수해 넘겨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