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란씨 작품 1000여점 해외원조단체에 ‘무료 분양’

입력 2011-05-20 18:03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갤러리 입구에 ‘분양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고등학교 교사이자 12번의 개인전을 연 작가 박경란(62)씨의 전시회 ‘죽어야 산다-하늘 정원에 핀 백만 송이 꽃’이 열리는 곳이었다. 전시회를 찾은 해외원조단체 ‘봄’ 관계자는 안내문을 보고 북한 어린이와 중국 조선족 소학교 기숙사를 위해 작품 기증을 부탁했다. 박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4월 말까지 이어진 전시가 끝난 뒤 전시회에 걸린 작품 1000여점을 전부 봄에 기증했다. 학교에서 도자기 수업을 한 것이 계기가 돼 5년 전부터 만들어온 작품이었다.

박씨는 20일 “예술은 공유돼야 하는 것”이라며 “작품을 그리고 만드는 동안의 즐거움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박씨의 남편은 1969년 비구상화로는 처음으로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고(故) 박길웅 화백이다. 그는 77년 남편이 작고한 뒤에도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남편의 작품을 한 점도 팔지 않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예술은 공유돼야 한다는 게 생전 남편의 뜻이었고, 그 뜻에 공감한 박씨 역시 돈을 받고 작품을 팔아본 적이 없다. 전시가 끝나면 모든 작품은 그대로 화랑에 두고 왔다.

그는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만들었고 거기에 담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가겠다는 사람들한테 화초를 나누듯 분양했다”며 “그렇게 소멸시킴으로써 나를 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작품을 단체에 기증하기로 한 것은 수익금이 좋은 취지에 쓰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이 특수 사회이긴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죄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2010년 6월 발족한 사단법인 봄은 독일의 해외 원조단체인 카리타스와 협력해 북한 및 조선족 개발원조사업을 하고 있다. 봄은 오는 27일 후원의 밤 행사에서 박씨가 기증한 작품 일부를 전시하고 몇몇 화랑과 함께 자선 전시 및 판매를 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