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입력 2011-05-20 18:11


성품윤리와 성격윤리

기독교윤리는 성서의 규범을 강조하므로 규범윤리로 규정되고, 그 결과 자칫 형식주의나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 반면 도덕적 결단에서 규범보다 상황을 중시하게 되면, 상황윤리로 나아가게 된다. 규범윤리나 상황윤리는 모두 규범과 상황을 강조함으로써 정작 도덕적 주체인 자아를 등한시하는 문제를 낳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행위자의 성품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성품윤리(Character Ethics)가 등장하게 되었다.

성품윤리는 동서양의 전통적인 덕 윤리(Virtue Ethics)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서의 성품은 도덕적 행위와 더불어 덕을 갖춘 인격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혜 용기 정의 절제 등을 사람이 갖출 덕목으로 간주했고, 유가에서는 인 의 예 효 등의 덕목을 사회적·도덕적 능력과 기능으로 간주했다.

기독교의 성품윤리는 어떤 규범, 덕목 자체보다는 그것이 기초하는 인성에 관심을 갖는다. 도덕적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도덕적 자아가 갖출 본성이 무엇인지 밝힌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보다 누가 어떤 품성으로 선에 관계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다. 행위의 전제로서 인간 됨됨이나 인격 변화를 강조한다. 선한 나무가 선한 열매를 맺듯, 좋은 성품을 갖춘 자가 도덕적 결실을 알알이 맺음은 당연하다(마 5:17).

성품윤리는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이 되어야만 선을 행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오직 너희는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4). 이렇게 새사람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자이고(빌 2:5),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벧후 1:4)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 즉 좋은 품성들을 두루 갖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선행을 한다.

성품윤리와 유사한 성격윤리(Personality Ethics)라는 것이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가 정의한 성격윤리는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성격,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키는 의도적이고 조작적인 실용기법이다. 찌푸리기보다 미소 짓는 것이 더 많은 친구를 얻는다든지, 마음속에 품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지 달성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 등이 바로 그렇다. 성격윤리에 속한 요소는 성격 개발, 이미지 개선,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설득력 훈련, 적극적 사고방식 계발이다.

오늘의 교회 현장에서 성품윤리보다는 오히려 성격윤리가 판을 치고 있다. 중생 이후의 품성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나아가는 성화 과정을 외면하고, 가시적이고 세속적인 성공에 주목한다. 성품이 이중적이고 간교하고 불성실한 사람이 아무리 설교를 예술적으로 잘하고 교회행정에 능하고 은사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강한 리더십을 갖췄다 해도 신앙적으로 볼 때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12)

강병오 교수(서울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