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軍 ‘고엽제 매립’ 사실이면 전면 책임져야
입력 2011-05-20 17:50
주한미군이 1978년에 경북 왜관 소재 미군기지 안에 맹독물질인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 약 50t을 파묻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사실 여부는 조사를 해봐야 한다지만 당시 기지에서 근무하면서 고엽제 매립에 동원됐다는 전 미군 병사 3명이 미 언론에 밝힌 진술이 일치하는 데다 모두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데 비추어 사실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주한미군은 오염 정화, 피해 보상, 사과 등 법적·도의적으로 일체의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체 규명해 당시 책임자를 문책해야 옳다.
고엽제가 어떤 물질인가.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독성물질’로도 불리는 맹독성 제초제로, 살포됐거나 매립된 지역 일대의 생태 환경은 물론 인체에도 치명적 해악을 끼친다. 특히 고엽제에 포함된 악성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은 잘 분해되지 않아 토양과 인체에 오랫동안 잔류·축적돼 세대를 이어가며 피해를 준다. 이런 물질이 50t이나, 그것도 낙동강에서 불과 3㎞ 떨어진 곳에 30년 이상 매립돼 있었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주한미군 측은 증언과 관련된 기록을 찾고 있다고 밝혔으나 그런 기록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미군 당국은 베트남전 종전 후 남은 에이전트 오렌지를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소각해 바다에 버렸다고 밝힌 바 있어 주한미군이 기지 안에 고엽제를 묻었다면 불법적으로 몰래 처리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은 기록을 조사하느라 시간을 끌지 말고 한국 측 요구를 받아들여 기지 내 공동 현장조사를 시급히 실시해야 한다.
혹시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공여지 조항을 내세워 공동 조사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한국민의 반미감정을 촉발해 동맹관계를 악화시킬 위험성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유류 누출 등 주한미군 기지의 환경오염 문제가 그간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지만 미군 측이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아 반감을 사왔거니와 고엽제 같은 맹독물질 매립 주장까지 나온 마당에 조사를 꺼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차제에 다른 기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는지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