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애국지사들이 묻힌 국립서울현충원을 가다

입력 2011-05-20 17:22


[미션라이프] 길을 잃었을 때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게 상책이다. 처음 출발지부터 더듬어오다 보면 어디서부터 그릇 왔는지 비로소 길이 보이는 것이다. 길을 잃은 한국 교회가 해야 할 일도 처음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다. 그래야 어긋난 길에서 돌이켜 제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끊임없이 옛적 일을 기억하라고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신 24:18, 사 46:9).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의 저자 이덕주 감신대 교수는 “한국 교회사의 처음을 수놓았던 신앙 선배들의 하나님을 다시 만날 때, 오늘의 한국 교회가 처한 신앙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10여명의 목회자들이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감리교 선교정책연구공간 ‘아레오바고’ 회원들이 호국의 달을 앞두고 신앙 선배들의 인생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기독교 사학자인 조이제(55) 샘솟는교회 목사가 앞장섰다. 조 목사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양화진선교묘원에 묻힌 해외 선교사들은 기억하지만 국내 크리스천 애국지사들이 국립현충원에 모셔져 있는 것은 아예 모른다”며 길을 인도했다.

129만㎡(43만 평) 넓이의 서울현충원엔 17만 기의 묘가 있다. 그 넓은 공간에 보이는 건 비석과 작은 글씨의 비문뿐. 이 중에서 신앙인의 묘비를 찾는다는 것은 산속에서 보물을 찾겠다는 거나 매 한가지 같았다. 하지만 국내 기독교 유적 답사의 베테랑 조 목사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도와 지형을 두어 번 비교하는가 싶더니 이내 임시정부 지사의 묘 앞에 이르렀다.

“하나님 사랑이 나라 사랑이요 이웃 사랑이 민족 사랑이다.” 그의 비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정도 목사. 평안도 출신인 그는 과거를 보러가다 선교사를 만나 예수 믿고 상투를 잘랐다. 집에서 쫓겨난 그는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돼 ‘손정도식 부흥운동’이라 일컫는 실천운동을 이끌었다.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를 하다 3·1운동 직전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초대 의정원장(국회의장)이 됐다. 임시정부 내 파벌이 생기자 만주로 넘어가 이상촌 건설에 모든 걸 바쳤지만 실패하고 지린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당시 빨치산 운동을 하던 김일성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옆의 묘비는 김인전. 전주 서문교회에서 목회하면서 3·1운동을 주도하다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장(국회의장)을 했다. 당시 임시정부엔 목사들이 많아 초교파적으로 연합 교회를 세워 매주 예배를 드렸다는 게 조 목사의 설명이다. 비문에 적힌 그의 설교문은 금방이라도 쩌렁쩌렁 울려올 것만 같다. “나라를 빼앗긴 분노와 국권 잃은 치욕이 불을 뿜고 있다. 피를 토함으로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역사를 되새기며 모든 동포는 굳건히 일어나서 내 나라와 우리들의 나라를 꼭 찾아야 한다.”

조금 내려가니 신석구, 이필주 목사의 묘비가 나왔다. 둘 다 민족대표 33인으로 감리교 목사였다. 이 목사는 상동교회 청년학원에서 교련을 가르치다 전덕기 목사한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다. 조 목사에 따르면 상동교회 청년학원은 당시 수많은 애국 청년들이 모이는 곳으로 감리교의 엡윗청년회와 함께 민족의 지도자를 길러내는 산실이었다. 특히 민중에 다가가는 목회자 전덕기 목사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일제 기록에 의하면 상동교회 청년학원에만 2000~3000명이 모일 정도였다. 당시 애국지사라면 예외없이 전 목사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조 목사의 전언이다. 전 목사가 목회하던 상동교회는 매주 3000여명이 예배를 드릴 정도로 인구 10만의 서울에서는 교세가 가장 컸다.

이렇듯 교회나 민족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전 목사지만 그의 묘비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독립지사 묘역 한켠에 위치한 무후선열제단. 유해도 후손도 찾지 못한(無後) 210명의 애국지사들을 기린 곳이다. 일제의 박해가 심해지자 전 목사의 후손들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연락이 완전 두절됐다. 그나마 금호동에 묻었던 전 목사의 유해는 일대가 개발되면서 화장해 강물에 뿌려 흔적도 없게 됐다. 이 무후선열제단엔 전 목사뿐만 아니라 김규식, 유관순, 이상설, 이휘종, 김마리아, 이동휘, 오화용 목사 등 쟁쟁한 크리스천 애국지사들의 이름이 마치 무명용사처럼 조그만 위패에 적혀 있을 따름이다. 이날 목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제단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병일(철원 향원감리교회·50) 목사는 “이름없는 무명용사들이 결국 나라를 구한 것 아니냐”며 “무명용사처럼 사는 게 진정한 목사의 길인데 자꾸 자신의 이름을 내려니까 교단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라며 감리교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