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대학 풍경서 시작 요즘 광화문 느낌까지… 유종호 비평에세이집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 발간

입력 2011-05-20 17:28


50년 넘게 비평 활동을 해온 문학평론가 유종호(76·사진)씨가 비평에세이집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현대문학 펴냄)을 냈다. 2년 전 출간된 ‘그 겨울 그리고 가을’이 1951년 당시 17세였던 저자의 6·25 동란기를 담고 있다면 이번 에세이집은 50년대 대학가의 풍경과 지난 시대에 대한 기억을 시작으로 문학의 표절과 모작의 문제, 최근 읽은 책과 일상의 소회까지 다양한 글을 담고 있다.

그는 영국작가 하틀리의 소설 ‘중매인’의 첫 대목인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라는 문장을 “과거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정의의 하나”라고 소개하며 정확한 과거의 이해를 이렇게 강조한다.

“과거사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된 것과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겠지만 근자에 근접 과거와 집단적 기억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회적 기억은 복수로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삶의 현장감과 너무나 판이한 근접 과거 이해나 서술을 접하게 되는 것도 계기가 되었다.”(‘책머리에’)

그는 “현기증 날 정도의 격심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은 20세기의 한국에서 근접 과거는 원격과거 못지않은 ‘외국’이 되어 있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며 “흔히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고 단언한다. 과거에 대한 기억의 차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국경이라는 얘기다.

“과거가 외국이며 거기서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거동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시키기 위해서는 정치 연대기가 아닌 사회사의 교육이 필요하다.”(15쪽)

그는 전 세계에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날린다.

“무라카미가 거둔 상업적 성공을 비하하거나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의 문학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학의 이상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하급문학이라는 것일 뿐이다. (중략) 나쓰메는 로렌스 스턴이나 제인 오스틴과 경쟁하려 하였고 우리 쪽 이태준이나 이효석은 체홉과 경쟁하려 했다. 무라카미의 상상적 경쟁상대는 텔레비전과 스포츠와 비디오와 스테레오이다. 그 경쟁에서 그는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고전이 보여주는 문학적 위엄의 상실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119쪽)

책 말미에서 광화문 서점가를 배회하는 것이 요즘 소일거리라고 소개한 그는 “현재 가지고 있는 책만으로도 읽은 것보다 못 읽은 것이 훨씬 많다”며 서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낀 소회를 전했다.

“그럼에도 아직껏 서점가를 배회하면서 읽지도 못할 책을 이따금씩 사들이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삶이 전과 다름없이 무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기최면적 착각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마침내 다가올 불가피한 시간의 접근을 잊고 외면하자는 무의식의 방책이었던 것이다.-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노약자석 시렁 밑에 앉아서 홀로 대오 각성한 것이다.”(355쪽)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