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파문] “1978년 왜관 미군 기지에 고엽제 드럼통 250개 묻었다”
입력 2011-05-19 21:57
주한 미군이 1978년 국내 미군기지 내에 고엽제로 쓰이는 독성물질을 묻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정부는 19일 주한 미 대사관과 미군에 사실관계 확인과 공동조사를 요구했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있는 KPHO-TV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방송에서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근무한 적이 있는 주한미군 3명의 증언 내용을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캠프 캐럴에서 중장비 기사로 복무했던 스티브 하우스씨는 인터뷰에서 “1978년 어느 날 도시 한 블록 규모의 땅을 파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냥 처리할 게 있다면서 도랑을 파라고 했다”면서 “그러나 파묻은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매장 물체는 밝은 노란색이거나 밝은 오렌지색 글씨가 써진 55갤런(약 200ℓ)짜리 드럼통이었으며, 일부 드럼통에는 ‘베트남 지역 컴파운드 오렌지’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우스씨는 설명했다. 드럼통 안에 든 물질은 ‘에이전트 오렌지’로,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사용했던 고엽제를 지칭한다.
당시 하우스씨와 함께 복무했던 로버트 트라비스씨는 창고에 250개의 드럼통이 있었으며 이 드럼통을 일일이 손으로 밀고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현재 웨스트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트라비스씨는 실수로 드럼통에서 새어나온 물질에 노출된 후 온몸에 붉은 발진이 생기는 등 건강상에 문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KPHO-TV 관계자는 “전직 군인 3명의 증언내용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열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에서 미군 측에 사실 확인을 요구했으며 양측은 향후 발견되는 사항에 대해 즉시 정보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분과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고 미군기지 내부 공동 조사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하수 오염으로 인한 기지주변 주민의 건강 피해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환경영향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외교부도 주한 미 대사관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미8군 사령부 제프리 부츠코스키(중령) 공보관은 “사실이라면 중대한 사안인 만큼 우선 사실 확인에 집중하고 있다”며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몰한 드럼통 250개 분량(약 50t)의 에이전트 오렌지에는 1.5㎏ 정도의 다이옥신이 포함된 것으로 추산된다. 다이옥신은 1g을 고루 나눠 먹을 경우 몸무게 50㎏인 성인 2만여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Key Word : 에이전트 오렌지
1960년대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사용했던 고엽제. 드럼통에 오렌지색 띠를 둘러 표시한 데서 유래했다. 미군은 베트남 정글에서 적군의 근거지를 제거하기 위해 나뭇잎 성장을 억제하는 고엽제를 사용했다. 61∼71년 고엽제 4400만ℓ가 베트남 주요 작전지역에 비행기로 살포됐다. 고엽제에 노출된 참전 군인에게서 각종 피해가 보고 돼 71년부터 살포가 중지됐다. 고엽제 성분 중 다이옥신은 체내에 장기간 잔류하며 암과 신경계 마비를 일으키고 기형을 유발한다.
이성규 선정수 기자,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