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잔치와 페스티벌
입력 2011-05-19 17:57
어린이날 즈음 파주 출판단지에서 ‘와글바글 어린이책잔치’가 열렸다. 버스를 타고 느지막이 도착한 책잔치에는 늘어선 천막과 어린이들 웃음소리가 잔치 기분을 북돋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페스티벌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꼈다. 잔치라는 말 대신 왜 굳이 페스티벌이라 할까? 우리가 언제부터 페스티벌을 즐겼나? 쉽고 좋은 우리말 대신 왜 외래어 쓰기에 목맬까? 이런 생각에 속이 거북하던 나는 페스티벌 아닌 책잔치 초대장을 받고 모처럼 속이 개운해졌다. 글을 다루는 책쟁이, 글쟁이들의 자긍심이 느껴졌다면 누군가 내 어깨를 치며 “에고, 순진한 착각쟁이!”라고 할까? “어린이 책 행사니 ‘잔치’라는 우리말을 쓴 거야. 똑같은 책 행사라도 서울 북 페스티벌이잖아” 하며 비웃을까?
하긴 주위를 보면 어린이와 관련된 것 아니면 건물이나 행사 이름이 거의 영어다. 이름 지을 때 우리말 이름에는 “됐고!” 손사래 치다가 영어 이름에는 “좋고!” 손가락 튕기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발음도 어려운 영어 이름 아파트에 살고, 헤어브러시로 머리 빗고, 아점 대신 브런치, 녹차 대신 그린티를 먹는다. 쉽게 이해되는 절 문화체험 대신 굳이 템플스테이를 하고, 기독교에서는 절 문화체험을 완벽하게 처치하려는지 교회 문화체험 대신 처치스테이를 계획한다. 그래야 국제화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그저 미국화가 되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브런치를 먹어도 우리 땅에선 아점을 먹고, 미국에서는 헤어브러시를 사용해도 우리 땅에선 빗으로 머리를 빗어야 정말 국제화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랏일을 하는 분들은 한 술 더 뜬다. 지방관청의 로고는 전주를 빼고 거의 영어로 돼 있다. 경부선 기차를 한번 타보자. ‘하이 서울’에서 출발! ‘이츠 대전’과 ‘컬러풀 대구’ 찍고, ‘다이나믹 부산’에 도착이다. 듣기만 해서는 이츠는 과자 이름 같고, 하이는 높다는 건지 인사말인지 잘 모르겠다. 또 일이 있어 관청에 가면 무슨 태스크포스를 찾아가야 한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전담팀이라고 하면 어려운 나랏일을 쉽게 생각할까봐 걱정되나 보다. 아니면 태스크포스에서 결정된 일만을 세계인들이 인정해주든지.
우리는 한복, 기와지붕이란 말만 들어도 저절로 우아하게 뻗은 곡선을 떠올리며, 잔치라는 말에는 절로 흥겨워진다. 우리말에는 조상들의 오랜 경험과 민족의 얼과 문화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우리말 대신 왜 설명이 따라야 하는 외래어를 굳이 쓰려 할까? 혹시 ‘세계는 하나!’라는 말을 ‘세계 언어는 하나!’로 착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세종대왕께서는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이 쓰기 편하라고 한글을 지으셨다. 그런 세종대왕께서 우리말이 미국말과 다른 것에 속상해하는 백성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 궁금하다. 아마 개그프로에 나오는 개그맨처럼 외치는 건 아닐까? 내가 괜히 한글을 지었어! 내가 괜히 밤샘하며 한글을 지었어!
오은영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