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상온] ‘소프라노 국가’의 식량지원 타령

입력 2011-05-19 17:58


미국의 북한 경제전문가 마커스 놀랜드 박사와 데이비드 어셔 전 미 국무부 대북조정관은 일찍이 북한에 ‘소프라노 국가’라는 레이블을 붙였다.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 ‘소프라노가(家)’에 나오는 이탈리아계 마피아 두목 토니 소프라노의 이름을 따 북한을 ‘국가 단위의 조직범죄집단’으로 규정한 것. 실제로 마약 제조·수출, 밀수, 납치, 노동자 임금 갈취 등 그간 북한이 정권 차원에서 행사해온 일들을 보면 이게 도대체 나라인지 조폭 집단인지 분간이 안 된다.

이런 북한의 행태는 최근 며칠간 잇따른 관련 보도로 재확인됐다. 우선 마약. 미국 폭스뉴스는 10일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북한 당국이 요덕 정치범수용소 인근에 조성한 양귀비 경작지를 2001년 처음 관측했을 때보다 13만㎡ 더 확대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김정일의 지시로 대규모 아편 생산을 시작해 이를 해외에 수출, 연간 약 5억∼10억 달러를 벌어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경작지를 늘렸으니 수입도 더 늘어날 터. 주 운반책은 외교관이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50여명의 북한 외교관이 세계 20여개국에서 마약을 운반하다가 체포되거나 추방됐다.

범죄로 정권 유지하는 北

두 번째는 밀수. 인도 일간지 인디언익스프레스는 1000억원대 차량 밀수사건에 북한 대사관이 개입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16일 보도했다. 대사관 명의의 수입차량은 관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이용해 차량 밀매범이 북한 대사관 측과 공모했을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 이외에도 중국의 반대로 채택이 무산된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연례 보고서는 앞서 북한이 해외 대사관을 이용해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 관련 자재와 무기를 계속 밀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임금 갈취도 있다. 동아일보가 북한인권개선모임 등 관련단체와 해외 현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11일 보도한 데 따르면 해외에 송출된 6만∼7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은 임금의 70∼80%를 북한 당국에 갈취당한다. 갈취당한 임금은 김정일의 사금고로 알려진 노동당 39, 38호실로 곧바로 송금된다.

나머지 임금도 김일성 김정일 생일 등 명절 때마다 일부를 ‘충성의 자금’으로 떼 가 손에 쥐는 최종 임금은 총액의 10% 미만이다. 하긴 새삼스럽지도 않다. 북한의 노동자 임금 갈취에 항의하는 인권단체들의 압력으로 체코 정부는 2007년에 북한노동자들을 모두 철수시키기도 했으니까.

이처럼 국가라기엔 참으로 민망한 범죄행위를 밥 먹듯 하면서 북한 정권이 하는 또 다른 짓이 ‘식량지원 타령’이다. 범죄로 벌어들인 돈은 이너 서클의 충성 유도를 위한 선물 구매,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 오로지 정권 유지용으로만 쓰면서 국민이 먹을 것은 외부세계가 대달라는 얘기다. 이 같은 북한의 식량지원 타령은 올 들어 더욱 소리가 높아졌다.

대북지원 앞서 自問할 것들

그럼에도 아직까지 주요 지원 공여국인 한국과 미국 정부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대북지원을 존립 근거로 하는 국내 대북지원 민간단체들과 일부 여론이다. 이들은 북한의 전방위적 식량지원 요구가 더욱 심각해진 식량난의 증좌라며 인도주의를 내세워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우선 먹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설령 식량난이 심각하지 않다 해도 한반도전략 차원에서 대북 식량지원이라는 지렛대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인도주의도 좋고 한반도전략도 좋다. 그러나 이들중 일부는 반드시 자문해봐야 한다. 지난해 5·24조치 이후 56개이던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원단체가 51개로 줄었다는 데서 보듯 대북 지원을 단체가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고 있는 거나 아닌지. 또 대북 식량지원을 함으로써 마피아 뺨치는 북한 정권의 범죄행위를 더 연장시키고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