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유랑하는 문화재
입력 2011-05-19 17:46
도쿄 오쿠라 호텔은 일본의 3대 호텔 중 하나로 꼽힌다. 군수산업으로 떼돈을 벌어 재벌 반열에 올랐던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의 장남 기시치로(喜七郞)가 자기 집터에 1962년 창업했다. 호텔 뒤편, 기하치로가 1917년 개관한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 오쿠라슈코칸(大倉集古館)으로도 유명하다.
오쿠라슈코칸 후원에는 고려시대 오층석탑이 있다. 오층석탑은 원래 경기도 이천에 있었는데 조선총독부가 1915년 공진회 전시를 위해 서울로 옮겼다. 당시 탐이 난 기하치로가 일본으로 몰래 반출했던 것이다. 평양 율리(栗里) 성터에서 가져다 놓은 팔각석탑도 같은 처지다.
지난해 10월 오층석탑환수추진위원회가 이천시 주민 절반이 넘는 10만9000명의 서명록을 슈코칸 측에 전달했지만 오층석탑은 아직 그곳에 있다. 슈코칸 측은 한·일 정부간 협의를 거쳐 일본 정부가 허용한다면 돌려줄 수도 있다는 애매모호한 태도다.
기하치로 같은 인물은 일본 도처에 있지만 문화재의 수준이나 규모로 볼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오구라 컬렉션이다. 그것은 식민지 시기 조선전력 사장, 대구상공은행 총재 등을 거친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가 수집한 우리의 고미술품들이다.
오구라 컬렉션은 총 1110점이다. 엊그제 서울에서 만난 일본 고려박물관 야마다 사다오(山田貞夫) 이사장은 오구라 컬렉션에 미술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재가 다수 포함돼 있으나 도굴한 것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한국은 오구라 컬렉션 반환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개인 소유라서 정부가 나서서 뭐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오쿠라슈코칸의 경우 ‘일본 정부가 허용하면∼’ 식의 책임회피성 발언과는 또 정 반대다.
우리의 문화재들은 지금 일본 곳곳에서 유랑하고 있다. 야마다 이사장은 국교정상화 때의 외교기록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근거로 해서 오구라 컬렉션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구라 컬렉션은 1982년 일본국립박물관에 기증돼 지금은 일본 정부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일본 시민그룹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고려박물관은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건국대 아시아·디아스포라연구소와 공동으로 ‘유랑하는 문화재’란 제목의 특별기획전을 이 대학 중앙도서관 로비에서 16일부터 28일까지 열고 있다. 우리도 잘 모르는 우리 문화재의 아픔, 이젠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