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리안’ 장영주 140자의 독주
입력 2011-05-19 18:12
40619대 0.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30)는 ‘중량급’ 트위터 이용자다. 상당히 많은 글을 줄기차게 올린다. 이 숫자는 그녀의 트윗을 읽어주는 ‘팔로어’와 그녀가 다른 사람의 트윗을 읽는 ‘팔로잉’ 건수. 4만619명이 읽어주는데, 남의 글은 하나도 안 읽는다? 이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그녀의 트위터엔 바이올린 얘기가 거의 없다. 뭘 사고, 뭘 입고, 뭘 먹었는지, 너무나 예술적이지 않은 글이 주를 이룬다. 왜 팬들과 예술 대신 사생활로 소통하는지, 또 팔로어를 팔로잉해주는 트위터 세계의 ‘매너’를 아는지 묻기로 했다.
지난 13일 독일 남부 콘스탄츠의 호텔에 머물고 있던 그녀와 전화가 연결됐다. 올해는 마침 그녀가 ‘천재 소녀’ 시절 첫 앨범을 녹음한 지 20주년이다.
-영주씨 트위터 팔로잉했다. 정말 트위터 열심히 하더라. 언제부터 했나.
“2009년 6월. 기획사가 팬과 소통하라고 하도 성화해서. 사실 인터넷 별로 안 좋아한다. 이메일 외엔 잘 안 한다. 유튜브도 별 재미없다. 유명 연주자 중 홈페이지도 제일 늦게 만들었을 거다. 관리할 자신이 없어서 트위터도 안 했더니 기획사에서 글을 대신 올려주겠다더라. 이왕 할 거면 내가 직접 하겠다고 했다. 해보니까 재밌던데.”
-트위터 글은 주로 언제 올리나.
“공항에서 기다릴 때. 공항 라운지에선 블랙베리를 끼고 산다(그는 18일 새로 산 블랙베리 배터리가 금방 닳아버린다는 불평을 트위터에 올렸다). 하루에 많으면 10번 이상 글을 올린다. 물론 바쁘면 일주일에 한 번도 올리지 못할 때도 있다. 트위터 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사람들 취향을 다 맞추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
-페이스북도 하나.
“아니. 친구들이 권하던데, 관리할 자신이 없다.”
-팔로어가 4만명이 넘는데 팔로잉은 0이다. 이럴 땐 마주 팔로해주는 게 예의인데.
“그런가. 바빠서…. 친한 친구와도 안부는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주고받는다. 트위터가 아니라.”
-블랙배리 최신형 샀던데 그거 좋은가.
“예전 블랙베리 키보드가 고장 나서 샀는데, 이게 짜증난다. 사진이나 전화번호는 새 것에 이동이 가능한데 이메일은 안 돼 고민이다. 터치스크린 방식이라 전화할 때 귀고리에 반응하면서 자꾸 꺼진다. 사람들이 왜 갑자기 전화를 끊었냐고 오해한다. 난 전화기를 침대 옆에 두고 아침에 메시지부터 체크한다. 누워서 하는데 새로 산 게 제법 무거워서 얼굴에 떨어뜨릴 때가 많다. 하하.”
-트위터 보니 스케줄이 정말 빡빡하더라.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이 정도 일정은 아무 것도 아니다(그녀의 스케줄은 늘 2∼3년 치가 꽉 짜여 있다). 일상적인 거다. 비행기나 차 탈 때 무조건 잔다. 또 열심히 먹는다(초밥을 무지하게 좋아한단다. 뉴욕의 일식당 ‘노부’ 단골이다).”
-야구 축구 농구… 스포츠광이라던데.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열렬한 팬이다(필라델피아에 집이 있다). 투수인 클리프 리를 좋아한다. 야수 중에는 체이스 어들리가 좋은데 요즘 부상자 명단에 올라서 경기에 못 나온다(부상자 명단 챙길 정도면 광팬이다). 빨리 돌아와야 하는데. 얼마 전까지 박찬호도 필리스에 있었는데 요즘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일본에 있다고 알려줬다). 유럽에 가면 TV로 축구 중계를 많이 해줘서 축구도 많이 본다. 박지성 잘하더라.”
-트위터에 음악보다 사생활 얘기가 더 많은 이유는.
“처음엔 바이올린과 음악에 대해 쓰려 했다. 그게 잘 안 써지더라. 조금씩 내 얘기를 쓰다보니 훨씬 재밌다. 어떤 분은 재밌다 하고, 어떤 분은 음악 얘기하라고 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웃음).”
-여가 시간엔 뭐 하나. 쇼핑에 대한 글이 많더라.
“영화 보는 거 좋아한다. 비행기에서 보는 거 말고 직접 영화관에서 보는 거. 쇼핑, 물론 좋아한다. 연주복도 많이 사고 최근엔 칵테일 드레스를 많이 샀다. 얼마 전 워싱턴에서 엄마랑 쇼핑하러 갔는데 재미없었다. 엄마는 드레스가 조금만 가슴이 파여도 야하다면서 못 사게 하신다(웃음). 어떤 분들은 쇼핑한 물건도 사진 찍어서 트위터에 올려달라고 하는데 그건 좀 별로인 거 같다.”
-드레스 정말 많겠다.
“몇 백 벌 될 거다. 펜실베이니아 집에 드레스만 넣어둔 옷장이 6개다. 거의 다 연주용 드레스. 연주 전에 이 작곡가 곡은 어떤 드레스를 입어야 어울릴지 생각한다. 청바지는 딱 두 벌밖에 없다. 구두는 드레스보다 더 많을 거다. 그런데 백은 별로 없다. 바이올린 케이스가 내겐 백이다.”
-좋아하는 브랜드는.
“드레스는 로베르토 카발리, 돌체 앤 가바나. 두 브랜드는 수선하지 않아도 내 몸에 잘 맞는다. 구두는 크리스찬 루브탱, 르네 카오빌라. 백은 주로 엄마 거 빌려 쓰다가 최근에 샤넬 하나 장만했다. 런던에선 주로 하비 니콜스 백화점, 뉴욕에선 삭스 피프스 애비뉴, 버도프 굿먼 백화점에 간다.”
-노골적으로 묻겠다. 1년에 얼마 정도 버나. 그렇게 쇼핑하려면 정말 많이 벌어야 할 텐데.
“하하. 사실 잘 모른다. 관리는 엄마가 한다. 돈을 엄마가 관리한다고 하면 외국 친구들은 다 이상하게 본다.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냐’면서. 난 그냥 엄마가 해주는 게 편하다.”
-1년에 대부분을 여행하는데, 가족 생각 안 나나.
“런던이나 워싱턴 같이 많이 가는 도시에선 항상 같은 호텔, 같은 방에 든다. 일부러 같은 방 달라고 해서 세팅도 비슷하게 한다. 그럼 집에 있는 느낌이 조금 난다.”
-어떤 외국 언론 보니까 홍보용 사진 이미지가 섹시미를 너무 강조했다고 썼더라.
“어떤 여자든 예쁜 드레스 입고 화장 잔뜩하면 글래머러스하고 섹시해 보인다(웃음). 내가 섹시한가? 전혀 아니다. 연주용 드레스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입어야 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선 야하게 입어도 사람들이 좋아한다. 아시아는 좀 보수적이라 재킷 같은 걸로 노출을 가린다. 두바이에서 연주한 적이 있는데, 거기선 정말 연주복 신경 많이 썼다.”
-서른 살인데 남자친구 있나.
“하하. 지금은 바빠서…. 나도 가족을 갖고 싶고 결혼을 생각한다. 바이올린 하면서 여행하는 걸, 바이올린은 매일 연습해야 한다는 걸 이해해주는 나이 많고 똑똑한 남자면 된다(그녀는 지난달 29일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에 큰 관심을 보이며 트위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케이트의 웨딩드레스가 처음엔 그리 예뻐 보이지 않았는데 자꾸 볼수록 우아하다면서).”
-첫 앨범 녹음한 지 20년 됐다. 그리고 30대가 됐다.
“20년을 같은 회사(EMI)에서 녹음한 건 나밖에 없다고 한다(지금까지 모두 21장의 앨범을 EMI에서 녹음했다. 올 가을에 나올 앨범도 이 회사와 작업할 예정이다). 그동안에는 ‘뭔가 보여줘야지’ 했었는데 이제는 연주를 즐긴다. 음악가라는 게 자랑스럽다. 어릴 때 했던 연주와는 이제 좀 다른 성숙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연주는 직업이 아니라 내 인생이다.”
-오는 11월 서울에 온다던데.
“11월 8∼9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그때 꼭 오시라.”
-이런 질문 너무 많이 받았겠지만, 좋아하는 작곡가나 연주자는 누구인가.
“브람스와 쇼스타코비치가 좋다. 연주자는 요요마. 아르헨티나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마르타 아르헤리치도 좋아한다(그녀는 최근 워싱턴의 한 콘서트에서 플라시도 도밍고를 만나고는, 스타를 봐서 설렌다며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도밍고와 함께 녹음한 적도 있는데 설레더란다).”
-갖고 있는 바이올린이 매우 귀한 거라면서.
“정말 바이올린마다 소리가 다 다르다. 요즘 기술이 발달했는데도 왜 똑같이 만들지 못하는지 신기하다. 러시아 출신의 바이올린 연주자 아이작스턴이 바이올린 구하는 데 도움을 줬다. 카네기홀에서 15개 정도 후보들을 놓고 소리를 직접 듣고 연주해보고 골랐다. 나랑 15년 이상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닌 악기다(그녀의 바이올린은 1717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과르넬리 델 제수다. 세계에 100대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어떤 연주자가 되려 하나.
“다른 음악가가 같이 연주하는 걸 좋아하는 연주자. 같이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솔리스트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음악가로 서로 좋아하는 그런 분들은 많지 않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천재였다.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는 8살이던 그녀를 오디션한 뒤 하루 만에 협연을 제의했다. 10살 때인 1991년 EMI사와 음반녹음을 시작했고, 그 앨범은 다음해 빌보드차트 클래식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런 천재들은 대개 ‘평범한 삶’을 동경하는 거 아니었나? 연애하고 사람들 앞에서 소리도 지르는 자유에 목말라하고. 그런데 그녀는 어려서부터 남들과 좀 다른 삶을 살아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주를 즐기고 있다”는 말도 통화 내내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트위터 얘기로 시작한 인터뷰는 드레스와 여행 얘기를 하다가 레이디가가, 비욘세, 본 조비 같은 팝스타 얘기로 넘어가더니 결국 1시간짜리 ‘수다’가 되고 말았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사생활을 살짝 들여다본 대화, 어느새 끝나버렸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사진 제공=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