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다가간 문학… 둘 사이 안전거리는 얼마인가

입력 2011-05-19 17:49


카스트로와 마르케스/앙헬 에스테반·스테파니 파니첼리/예문

‘백년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84)와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85) 전 국가평의회 의장. 라틴문학의 거장으로, 마술적 리얼리즘의 절정으로 세계 문학사를 흔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와 20세기 국제 정치사의 지형도를 바꿨던 노(老) 혁명가.

둘은 혁명 전야처럼 들끓던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거리에서 처음 만났다. 피의 대폭동 ‘보고타소’가 발발한 1948년 4월 9일. 국립보고타대학 법대 2년생 마르케스는 자신의 소설이 건물과 함께 불타는 걸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시간, 흥분한 군중 틈에서는 야심 찬 청년 한 명이 달리고 있었다. 11년 뒤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키고 강대국 미국의 턱밑에서 반세기 장기집권을 이어간 카스트로였다. 스치듯 만난 둘의 우정은 이후 60여 년간 견고하게 이어진다. 사적인 동시에 정략적인 우정이었다. 노회한 독재자와 위대한 작가의 “쇠처럼 단단한 우정”을 읽으며 궁금해진다. 문학과 권력의 안전거리는 얼마쯤일까. 권력에서 얼마나 멀어졌을 때 문학은 순수할 수 있을까.

‘카스트로와 마르케스’는 20세기의 두 거물이 평생에 걸쳐 이어온 협력과 공생,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우정은 긍정적인 단어이지만, 우정을 묘사한 저자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책은 지극히 정치적이었던 두 사람의 우정 뒤편에 드리운 그림자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우정은 마르케스의 일방적 구애로 시작됐다. “쿠바혁명에서 중남미 대륙의 미래를 발견했던” 마르케스는 카스트로를 찬양하는 글과 인터뷰를 발표하며 쿠바혁명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그의 애정은 쿠바가 정치범 탄압과 고문, 사상통제의 집단수용소로 변해갈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스탈린주의 소련과 협력할 때도, 앙골라 내전에 개입했을 때도 마르케스는 카스트로의 결정을 나서서 변명했다.

끈질긴 노력은 카스트로의 신뢰로 보답 받았다. 대가는 컸다. 마르케스는 카스트로라는 친구 한 명을 얻은 대신, 나머지 친구들을 잃었다. 유럽과 남미의 비판적 지식인 대부분이 마르케스에게 등을 돌렸다. 1968년 쿠바 시인 에베르토 파디야 사건은 결정적이었다. 서구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쿠바혁명과 카스트로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던 시절. 파디야는 망명한 쿠바 작가의 작품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반역시인이란 죄목으로 체포됐다.

전 세계 작가들이 들고 일어났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장 폴 사르트르(프랑스), 후안 고이티솔로(스페인) 등 각국 유명 작가들은 카스트로에게 두 차례에 걸쳐 항의편지를 썼다. 오직 한명 마르케스만은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가 첫 번째 편지에 서명했는지는 지금도 논란거리. 두 번째 편지는 서명을 거절했다. 1960년대 중남미 문학을 이끈 ‘붐’ 세대 작가들은 마르케스의 거부를 문학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마르케스는 ‘카스트로의 뚜쟁이’ ‘피델의 궁정작가’ ‘카스트로의 신하’ ‘쿠바의 비공식 외무부 장관’ ‘음모가’라는 조롱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 친구였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요사의 분노는 격렬했다. 그는 ‘카스트로와의 친분을 이용해 쿠바 정치범 3200명이 석방되도록 도왔다’는 마르케스의 주장에 격분했다. “카스트로는 신하와 친구를 위해 때때로 정치범들에게 자유를 선물로 준다. 그걸로 양심을 씻는다. 구역질나는 후안무치의 극치다…마르케스가 카스트로와 함께 있는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 외에 쿠바에 가는 다른 어떤 목적이 있는가.”

마르케스가 카스트로라는 개인에 매료됐는지, 권력에 끌렸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마르케스가 카스트로를 존경했고 자신의 문학적 명성을 쿠바혁명의 대의에 바치려했음은, 여러 건의 글과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다. 권력 주위를 맴돈 정황 역시 많다. 마르케스의 권력자 친구는 카스트로만이 아니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펠리페 곤살레스 전 스페인 총리,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은 모두 마르케스가 수집한 권력자 친구들이었다. 대신 마르케스의 권력욕은 언제나 한계가 명확했다. 그는 모국 콜롬비아에서 끊임없이 장관과 대사직을 제안 받았지만 끝내 작가로 남았다. 그의 권력욕은 간접경험이라는 엄격한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마르케스가 사랑한 건 권력이 아니라 권력자의 위대함과 초라함이었을까. 작가는 카스트로를 통해 권력자의 고독과 잔인함, 성(聖)과 속(俗)을 엿보고 연민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카스트로가 세상을 뜨면, 카스트로의 쿠바는 역사적 공과를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때는 권력에 너무 다가갔던 마르케스의 삶도 함께 재평가받게 될 것이다. 저자는 스페인 그라나다대학 라틴아메리카 문학 교수와 미국 윈게이트대학 현대언어학 교수. 변선희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