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식 수술 3000례 돌파…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팀

입력 2011-05-19 16:49


그의 등은 굽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는다.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수술장을 지키며 꼼짝 않고 서서 칼을 들어왔다. 다리에 울혈이 생겼고 피부염이 더해져 고름이 흐를 때도 있다. 수술에 평생을 바친 외과의사는 이런 ‘직업병’을 얻었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00회 팔굽혀펴기를 거르지 않는다. 수술장 휴게실에 러닝머신을 들여놓고 수술하다 틈나면 4㎞씩 달린다. 10여년째 병원 꽃꽂이모임 회장인데, 좋아하는 스포츠는 복싱이다. 직경 2㎜ 동맥을 잇는 섬세함과 수술대에만 서면 끝까지 싸우는 투지를 함께 갖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및 간담도외과 이승규(62) 교수. 사람들은 간이식 수술을 현대 의학의 꽃이라 하고, 그를 간이식 수술의 대가라고 부른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은 지난달 6일 간이식 수술 3000례를 돌파했다. 1992년 뇌사자 간이식 수술을 처음 시작한 지 19년 만이다. 2007년부터 매년 300례 이상 수술하면서도 성공률은 96%가 넘어 85% 수준인 미국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평균 15시간의 수술 시간, 수많은 혈관을 일일이 연결해야 하는 난이도, 기증자와 수혜자를 이웃한 수술실에 눕혀놓고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모두 정복했다.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2대 1 간이식 수술(기증자 2명에게서 동시에 조금씩 간을 떼어 1명에게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

세계 최고의 간이식팀은 의료진의 이런 노력과 함께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간을 내놓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13일 AM 07:00 서관 3층 외과계 중환자실

인공호흡기, 심박측정기가 침대마다 어지럽게 널린 중환자실. 한쪽 구석 5평 남짓한 회의실에 이승규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 15명이 빼곡히 앉아 있다. 숨쉬기도 버거운 작은 공간에 스페인, 인도, 베트남에서 온 의사들도 섞여 있었다. 뒤에서 보니 15명의 뒷머리는 대부분 납작하게 눌렸다. 장시간 수술모 쓰고 있을 때 생기는 자국. 이날도 새벽까지 수술이 있었다.

넉 대의 모니터 앞에서 영상의학과 김경원 교수가 수천 장의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초음파, 혈관조영 이미지를 빠르게 넘겼다. 그의 오른쪽에서 중환자실 주치의가 환자 상태를 브리핑했다. 김 교수 왼쪽이 이 교수 자리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얇은 크리넥스 화장지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손끝의 감각을 살리기 위한 버릇. “그 환자 대변 색깔은 어때?” 이 교수가 회의 중 던진 수많은 말 중에 내가 해독할 수 있었던 건 이것뿐이다. 여기선 영어로 된 의학용어가 표준어다.

이 교수 뒤편에서 다른 교수들은 ‘보조부(補助簿)’라고 쓰인 기업회계용 장부책을 펴고 뭔가 적고 있다. 삼색 볼펜으로 환자들의 수술 경과와 회복 후 특징을 문자나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과거 기업들이 비자금 장부로 썼을 법한 이 두꺼운 노트에 간이식팀의 모든 기술이 담겨 있다. 팀원은 물론이고 외국 교수진도 원하면 다 볼 수 있다.

오전 7시에 시작된 ‘환자 일일 브리핑’은 100여명을 모두 보고한 오전 9시가 돼서야 끝났다. ‘스승의 날’을 이틀 앞두고 의료진이 준비한 케이크와 꽃이 도착했다. 이 교수는 특별히 영상의학과 성규보 교수를 모셔왔다. 그는 성 교수를 향해 “별명이 터미네이터인 분”이라고 했다.

외과의사가 간 조직의 혈관을 잇고 배를 봉합했는데 그 혈관이 막힌다면? 다시 개복수술을 하긴 어렵다. 그럴 때 혈관조영술로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이가 인터벤션(중재적 영상시술) 전공인 성 교수다. 20년 넘게 이 교수팀과 함께한, 외과의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종결자’. 이번엔 성 교수가 이 교수를 향해 “인덕이 많은 분”이라고 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수술에 모든 걸 바치라고 주문하는데, 그의 제자들은 단 한 명도 다른 병원으로 도망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환담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의사들이 하나 둘 회의실을 빠져나가고 없다. 수술장과 병동으로 흩어졌다. 왜 하필 중환자실의 이 좁은 구석방에서 회의를 하냐고 이 교수에게 물었다. “여기가 환자와 가장 가까운 장소니까요.”

AM 11:00 서관 2층 장기이식센터

간이식 수술의 월드 베스트 기록을 이 교수 혼자 쌓은 건 아니다. 이 수술을 하려면 이식할 간이 있어야 한다. 국내 1호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하희선(50)씨는 동관 2층 장기이식센터에 있었다. 그의 역할은 장기 기증자와 수혜자를 관리하는 것이다. 기증자는 이식 수술이 끝나서 회복할 때까지, 수혜자는 수술 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돌봐야 한다.

하씨는 간호사 출신이다. 임상 경력이 적어도 5년 이상이어야 이 일을 할 수 있다.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상담을 많이 해야 해서 사람 대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건 접근성이다. 하씨는 “뇌사자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병원 근처에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간이식은 크게 뇌사자 간이식과 생체 간이식으로 나뉜다. 뇌사는 뇌 기능이 정지하고 심장만 뛰는 의학적 사망 상태다. 뇌사자 가족이 장기기증을 결심하면 이 교수 간이식팀이 장기를 적출한다. 피를 흘리는 시간이 적을수록 장기의 질이 좋기 때문에 꺼내서 빨리 붙이는 게 중요하다. 분초를 다툴 수밖에 없다.

생체 간이식은 살아 있는 기증자의 배를 열고 간 일부를 떼어내 만성 간질환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뇌사자 간이식이 활발하지만 한국은 생체 간이식이 월등히 많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으면 한국인은 기꺼이 수술대에 오른다. 이 교수팀의 간이식 3000례 가운데 뇌사자 간이식은 430건, 생체 간이식은 2570건이다.

하희선 코디네이터는 “지금도 1호 기증자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92년 8월 그와 이 교수팀에게 첫 번째 간이식 기회를 허락한 이는 고(故) 양희찬(당시 21세) 상병. 고인은 신학대 재학 중 입대해 제1특공대대 군종병으로 복무하다 사고로 뇌사자가 됐다. 고인을 경남 마산통합병원에서 헬리콥터로 공수해 온 수술팀은 간, 신장, 각막을 적출해 5명에게 나눴다.

요즘은 KTX가 헬리콥터를 대체하는 추세다. 하씨는 “2008년 뇌사에 빠진 권투선수 최요삼씨의 장기기증과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의 사후 각막기증 소식이 알려진 직후가 가장 바빴다”고 말했다. 당시 뇌사자 장기기증 결심이 릴레이로 이어졌었다.

PM 03:00 서관 3층 수술장 D로제트

이 교수가 수술장 D로제트에 나타났다. 로제트는 장미꽃 장식을 말한다. 수술장 중앙 데스크를 중심으로 6개 수술방이 꽃잎 모양으로 흩어져 있다. D로제트는 간이식 전문 수술장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속옷만 남기고 모두 벗은 뒤 멸균 처리된 푸른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머리엔 수술모를, 입엔 마스크를 했고, 맨발에 슬리퍼를 착용했다. 수술 환자의 감염을 막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솔에 세척액을 묻혀 팔꿈치까지 닦아내던 이 교수가 수술방에 대해 설명했다. “1번방은 주로 기증자, 2번방은 수혜자인데 수혜자는 중증환자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주로 2번방에서 수술합니다. 나머지 방은 좀 더 간단한 케이스들이 진행됩니다.”

다른 집도의들과 달리 이 교수 혼자만 헤드램프를 썼다. 그 불빛에 환자의 배 안쪽 핏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수술장 이향우(40) 수간호사는 “2번방은 특별히 LED 무영등을 추가로 설치했는데도 이 교수님은 꼭 저 헤드램프를 쓰신다. 눈에도 좋지 않은데”라고 말했다. 무영등은 여러 각도에서 빛을 비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수술하다보면 보조 집도의의 머리 그림자가 어른거릴 수도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그것까지 막고 싶은 거다.

2번 수술방 달력에는 전날까지 이뤄진 생체 간이식 수술 횟수가 기록돼 있다. 이날은 153회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여건 많다. 올해도 이 교수팀은 자신들이 지난해 세운 ‘한 해 최다 수술 세계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수술방 안쪽에 걸린 여러 액자에는 각종 주의사항이 담겨 있다. 수술팀이 과거에 했던 실수들을 글로 새긴 것이다. 이향우 수간호사는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팀원들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했다. 역시 대부분 해독이 불가능했다.

단 하나, 1번방에 걸린 액자에만 읽을 수 있는 글이 있었다. ‘기증자 피부 봉합 시 최대한 예쁘게 봉합하시오!’ 1번방에 들어오는 기증자는 대부분 부모에게 간을 주려는 아들과 딸이다. 20대가 많다. 이 수술의 흔적은 그들 몸에 평생 남을 것이다.

2번방에 들어간 이 교수는 3시간 넘게 같은 자세로 환자의 간 주변 조직과 혈관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이를 박리라고 부른다. 간질환을 오래 앓은 사람의 뱃속은 의대 해부학 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모습과 크게 다르다. 간 주위가 이웃 장기와 달라붙어 온갖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걸 세심하게 펼쳐야 간을 떼어낼 수 있다. 이 교수가 수술장에서 나오는 모습은 끝내 보지 못했다. 수술은 자정을 넘겨 끝났다.

PM 04:30 서관 3층 수술장 D로제트

일요일인 15일, 간이식팀에 ‘응급콜’이 떴다. 지난 9일 뇌사에 빠진 40대 여성의 가족이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수술 시간은 낮 12시30분으로 잡혔고, 뇌사자 장기를 적출할 송기원(40) 교수가 콜을 돌렸다. 의료진이 속속 D로제트에 집결할 즈음 연락이 왔다. 가족 중 한 명이 뇌사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지방에서 상경 중이라고 한다. 수술 시간은 오후 4시30분으로 연기됐다.

1번방에서 송 교수가 칼을 들었다. 팀원 전체가 고인을 위해 묵념을 했다. 송 교수는 “불행한 일이 생긴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수술을 잘해서 다른 사람을 건강하게 살리겠다는 다짐을 되뇌곤 한다”고 말했다. 소독과 마취를 거쳐 장기 보존액을 주입한 뒤 오후 9시 간과 양쪽 신장, 심장과 각막을 떼어냈다.

이웃한 2번방에선 문덕복(44) 교수가 만성 간질환자의 배를 열고 이식을 준비 중이다. 이 환자는 장에서 간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간 문맥이 없었다. 정상적인 간 문맥 대신 자잘한 혈관이 커져 있는 상황. 이를 세심하게 분리하고 췌장 밑에서 혈관을 떼어내 새로 문맥을 만들어줘야 했다. 가장 위험도가 높은 문맥 부분은 미리 나와 있던 이승규 교수가 직접 집도했다.

문 교수는 “간 문맥을 재건하는 건 10년에 한번 나오는 케이스”라고 말했다. 주니어 교수들이 어려워하고 또 사고가 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부분. 그걸 나서서 해결한 사람은 리더인 이 교수였다. 이날 수술도 다음날 오전 1시쯤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16일 PM 02:30 동관 6층 대강당

간이식으로 새 삶의 기회를 찾은 이들의 모임 ‘새생명회’ 정기총회 및 축제가 열렸다. 회원들은 대강당 490석의 3분의 2 이상을 채웠다. 이 교수가 나타나자 앞 다퉈 다가가 90도로 허리를 굽힌다. 다른 병원에서 포기한 자신을 살려줬다는 인사가 제일 많았다. 이 병원을 ‘제4차 진료기관’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었다. 이 교수팀의 간이식 성공률 96%를 평가할 때, 소생 가능성이 낮은 환자까지 돌려보내지 않고 모두 돌봤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회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자 가운데 최연소자는 유정현(11)양이다. 초등학교 5학년. 태어날 때부터 담도폐쇄증을 앓았다. 대변이 흰색이었고, 간이 망가져 온몸이 샛노랬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엄마 변상희(42)씨는 “에티오피아 난민 아기 같았죠. 팔다리는 뼈만 남았고, 복수가 차서 배만 불룩했어요”라고 했다.

정현이는 돌을 갓 지난 2001년 5월 18일 간이식을 받았다. 기증자는 엄마. 변씨는 이날 시루떡 찰떡 인절미 등 떡 세 상자를 준비해 왔다. “10년간 잘 자라 줬어요. 간이식 수술 받은 날은 정현이의 또 다른 생일인 셈인데, 어른들이 생일에 시루떡을 돌리시잖아요. 그래서 가져왔어요.”

정현이가 지금은 새 생명을 얻었지만 10년 전엔 변씨의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같은 소아간이식 병실에 있던 분들도 그랬고, 저도 친척한테 그런 말을 들었죠. 아이는 또 가지면 되는데 뭐 하러 수천만원 들여서 엄마까지 수술하고 이식하고 하냐고. 지금도 우리 모녀는 대중목욕탕에 못가요. 할머니들이 아이 수술 자국을 보고 ‘그렇게 하고 어떻게 살았느냐’ 하시거든요.”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훈장처럼 달고 있는 정현이의 꿈은 가수다. 걸스데이의 노래 ‘반짝반짝’을 제일 좋아한다. 인라인 스케이트도 수준급이다.

PM 04:00 별관 장례식장

병원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다. 새생명회 축제를 뒤로하고 별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전날 D로제트에서 장기를 꺼내 환자 4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난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조문을 하고 유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전했다. 장기기증을 결심한 유가족의 이야기, 취재하지 못했다. 다만 고인이 한때 간호사였고, 이 병원 소속이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이 교수는 91년 9월, 그러니까 최초 뇌사자 간이식 수술에 성공하기 꼭 11개월 전에 장기기증서약을 했다. 그의 서약서에는 장기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기증한다고 적혀 있다. ‘사망 후 육체가 이웃을 위해 쓰일 수 있음을 감사드리며, 나의 장기를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기증할 것을 서약합니다.’ 자필 서명 뒤에는 이 교수의 지장이 찍혀 있다.

17일 AM 08:30 서관 3층 외과계 중환자실

중환자실 비좁은 회의실에서 아침 회의를 끝낸 이 교수가 회진에 나섰다. 다른 교수들처럼 뒤에 줄줄이 의료진을 대동하지 않는다. 24시간 중환자실을 돌보는 박형우(35) 전임의(전공의 과정을 마친 임상강사)만 함께한다. 지난 2월 중환자실에 배치된 박 전임의는 이날까지 딱 세 번, 반나절씩 집에 다녀왔다고 했다.

이 교수가 24시간 투석기를 달고 있는 김모(69) 할머니 앞에 섰다. “숨을 크게 한번 내쉬어 보세요.” 김 할머니 눈빛이 잠깐 반짝였다. 하지만 숨을 잘 내뿜지 못한다. 기도에 관을 꽂아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고맙다는 말을 눈으로 한 것이다.

김 할머니는 지난 1월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기증자는 딸(43)과 아들(41). 2대 1 생체 간이식이었다. 간은 나누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서 얻을 양이 충분치 않을 때, 또 기증자가 40세를 넘겨 노화가 진행됐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2000년 이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수술법이다. 환자가 10명이면 부닥치게 되는 10가지 어려움. 간이식팀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원동력이다.

이식수술 뒤 복수가 빠져 살 것 같다던 김 할머니는 폐에 물이 차면서 폐렴으로 악화돼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기증자인 딸이 수술에서 회복해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울었다.

“지난해 1억5000만원을 마련해 중국 톈진에 가서 간이식을 받으려 했어요. 엄마가 자식들 몸에 칼 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중국까지 가려고 한 거죠. 그런데 톈진에 아버지가 미리 가서 알아보니 엄마 나이가 많다고 수술할 수 없대요. 그때까진 2대 1 간이식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 어려움을 뚫고 이 병원에서 수술 받으셨는데, 이제 폐렴 때문에 고생하시는 게 너무너무 안타까워요. 꼭 좋아지셔서….”

PM 02:00 서관 3층 수술장 D로제트

오전 8시30분 시작된 2번방 간이식 수혜자 수술은 계속됐다. 집도의 문덕복 교수가 점심식사를 하도록 이승규 교수가 교대해줬다. 이 교수는 오후 2시를 넘겨 수술방에서 나왔다. 나흘간 취재 끝에 처음 이 교수와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할 기회를 잡았다. 인터뷰는 수술장의 간호사 휴게실에서 이뤄졌다.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 2대 1 간이식 등 ‘최초’ 타이틀이 많습니다. 다음 도전은 어떤 것입니까.

“특별한 건 없습니다. 환자를 볼 때 제일 중요한 건 겸손입니다. 수술장에선 조그만 실수 하나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사잇길로 빠지지 않고 끝까지 수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해주지 않으면 환자가 갈 곳이 없습니다. 어려운 케이스는 또 옵니다. 그때 주저하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검토해보고 할 겁니다.”

이 교수는 장기이식센터 소장이기도 하다. 센터 입구에는 후원재단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에게 간이식 수술을 받고 완치된 사람들이 세운 재단이다. 매년 억대 기금을 조성해 평균 10명씩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 수술비와 외래진료비를 지원한다.

이 교수는 가난한 환자를 만나면 자신이 주치의임에도 특진 대신 일반 진료로 처리해 선택진료비를 내지 않게 배려하는 ‘편법’도 쓴다. 이것은 의료진 다수의 증언을 통해 취재한 사실이다. 이렇게 하면 환자 병원비는 상당히 많이 줄어든다. 병원 원무과는 난색을 표하겠지만.

-그런 환자가 많습니까.

“아닙니다. 열 명 중 한 명 정도나 될까요. 돈이 없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16일 장기기증자 빈소에서는 어떤 기도를 하셨나요.

“가족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고 위로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뇌사자 장기기증 결심이 쉬운 게 아니거든요.”

-좋은 의사는 어떤 의사인가요.

“일본에 와지마 고이치라는 복싱 미들급 세계챔피언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유제두에게 졌다가, 리턴매치에서 유제두를 꺾었죠. 그때 그의 말이 “나는 한 번 붙어서 졌던 사람에게 절대 다시는 지지 않는다”였습니다. 의사도 한 번 졌던 환자에게 다시 지면 안 됩니다. 무슨 실수를 해서 그 환자를 잃었으면, 내가 왜 그랬는지 가슴에 담고 똑같은 케이스를 만났을 때 두 번 다시 전철을 밟으면 안 됩니다. 의사는 환자의 희생에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글=우성규 기자, 사진=김태형 선임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