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사외이사 거수기 맞네!”… 불과 10∼20분만에 안건 보고받고 “찬성·찬성”

입력 2011-05-18 22:26


‘불참은 해도 반대나 기권은 없다.’

금융회사 사외이사들 대부분이 이사회에 참석해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음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사외이사 모범규준 제정에 따라 이들 각 은행권이 최근 전국은행연합회에 제출한 4월 중 사외이사 활동 등에 대한 공시를 보면 그 운용 실태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다. 이사회나 리스크 관리위 등에서 반대표를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만큼이나 어렵다. 불과 10∼20분 만에 안건을 보고받고 만장일치 찬성표를 던진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금융감독원 쇄신안의 하나로 상근감사를 폐지하고 대신 사외이사 전원을 감사위원회로 채우겠다고 했지만 사외이사들의 이 같은 업무 관행이 상근 감사를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KB금융지주 8명의 사외이사들은 지난달 28일 오전 8시40분부터 불과 20분간 이사회운영위원회에 참석해 이사회 규정 개정안에 대해 보고받고 이사회 의장 업무추진비 한도설정안에 대해 전원 찬성표를 던졌다. 이어 열린 이사회에서는 1분기 경영성과 등 3건을 보고받은 뒤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그룹경영위원회 규정 개정안 등 3개 의결안건에 역시 100% 찬성했다.

감사위원회 멤버인 하나금융 사외이사들은 지난달 15일 30분간 열린 감사위원회에서 내부고발자 보호규정을 보고받으면서 역시 아무런 이견도 내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개최된 우리금융 이사회에서도 사외이사들은 감사위원회 결의사항, 재무사항 등 8개 보고안건을 이견 없이 보고받고 2개 의결안건에 찬성했다. 이들 가운데 한 사외이사는 ‘학내행사’를 이유로 감사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와의 MOU 이행실적을 점검하는 심의위에도 불참했다.

산업은행의 경우 사외이사 2명 중 한 명만이 참석해 주주총회 소집안에 찬성했다.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지난달 7일 보상위원회의 위원장 선임 안건을 불과 5분 만에 처리하기도 했다.

지방은행들도 마찬가지다. 4월 22일 부산은행 사외이사 5명은 20분 만에 1분기 가결산 결과 등 4건을 보고받고 9건의 안건을 처리한 뒤 이어 열린 보상위에서도 5개 안건을 20분 만에 처리했다. 대구은행은 6개 보고안건에 대해 전원이 ‘적정’판정을 내린 뒤 금감원 출신으로 퇴임하는 김모 상근감사에 대한 장기성과 현금보상 지급안 등에 대해 만장일치 찬성했다.

사외이사들의 활동에 비해 연간 보수가 너무 높다는 지적도 있다. KB금융 사외이사의 지난 4개월간 활동 시간은 10.8∼17.3시간인데 연봉은 1인당 6870만원이나 된다. 산업은행은 올 연봉을 20.1%나 올렸다. 외국계인 SC지주나 계열사인 SC제일은행, 한국씨티지주는 22.9∼36.7%나 올랐다.

은행권은 사외이사들이 무작정 거수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고 항변한다. KB금융관계자는 “주요 사항을 의결할 때 운영위가 열리는데 그 이전에 경영협의회를 한다”면서 “반대가 없다는 것은 내용 자체가 부정적인 게 없을 때 오케이하는 것으로 대부분 찬성이 많고 간단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짧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