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채 박사 “돈 버는 대로 화폐 사서 모았지요”… 한국화폐 2876점 20년전 기증
입력 2011-05-18 19:19
한국 성형외과 분야의 선구자인 정성채(89) 박사는 1963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3회 국제성형외과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영국을 방문했다. 런던의 한 미장원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얼굴이 새겨진 1실링을 받고선 자세히 들여다보니 발행연도가 100년이 지난 것이었다. 영국 동전의 오랜 역사에 흥미를 가진 정 박사는 이때부터 각국의 화폐를 모으기 시작했다.
화폐는 나라마다 재질, 크기, 그림이 다르고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예술, 공예 등을 담고 있기에 국제학회 참석 때마다 화폐 수집에 열중했다. 50여개 나라의 돈을 모은 그는 60년대 말부터 한국 화폐에 관심을 두었다. 취미 차원을 넘어 체계적으로 우리 돈을 모으기로 작정했다. 이후 20년 넘게 수집한 한국 화폐 2876점을 1992년 국립민속박물관에 선뜻 기증했다.
17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정성채 박사 기증 화폐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한 정 박사는 “평생 동안 모은, 자식 같고 손주 같은 화폐들을 기증 이후 20년 만에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70년대 몇 안 되는 성형외과(삼미의원) 의사였던 그는 “당시 주위에선 개발 붐이 한창인 강남 말죽거리 땅을 사두라고 권유했지만 돈을 버는 대로 화폐를 샀는데 전시까지 열게 되니 보람을 느낀다”며 웃었다.
그가 수집·기증한 화폐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화인 고려시대 ‘건원중보’부터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종류별로 다양하다. 이 가운데 1885년 발행된 ‘주석시주화’, 1892년 국제규격으로 발행된 ‘오량은화’, 1906년 발행된 ‘심환금화’ 등은 국내 한두 개밖에 없는 희귀품이다.
그의 화폐 수집품을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시중에서 몇 억원까지 호가하는 것도 있다고 민속박물관 측은 전했다. 정 박사는 “우리 역사와 문화가 담긴 화폐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가족들도 모르게 박물관에 기증했다”면서 “돈에 담겨 있는 아날로그적 아름다움을 반추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11일까지 열린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