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언라이보다 더 강렬한 인물 만난 적 없다”…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저서에 언급

입력 2011-05-18 19:19

헨리 키신저(87)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관리 중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은 인물이다. 40년간 50여 차례 중국을 방문했고 7명의 미·중 지도자와 함께 일했다.

키신저는 17일(현지시간) 발간한 저서 ‘중국에 관해(On China)’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지도자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공산당 총리를 꼽았다. 그는 “60여년에 걸친 공직생활에서 저우보다 더 강렬한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첫 만남은 1971년 7월 키신저가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할 때였다. 저우는 마오쩌둥(毛澤東)에 이어 2인자였지만 키신저의 눈에는 ‘작지만 기품 있고 눈에서 빛이 나며 표정이 풍부한’ 저우가 더 눈에 띄었다.

키신저는 “마오는 대중을 압도한 반면 저우는 대중에 퍼져나가는 인물이었다”며 “마오의 열정이 적을 장악하는 데 반해 저우의 지혜는 상대를 설득하거나 노련하게 다루는 쪽이었다”고 회고했다. 키신저와 저우는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 마오 간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키신저는 89년 6월 중국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미국의 입장을 ‘딜레마’로 표현했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미 대통령은 70년대 국무부 소속으로 베이징에서 일해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지만 미 의회가 제재를 결정하는 등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덩샤오핑(鄧小平)을 ‘친구’라고 칭하며 친서를 전했으나 중국은 “미국이 지나치게 개입한 것은 유감”이라는 답을 들었다.

책에는 한국전쟁에 관한 비화도 기록돼 있다.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 요청을 승인한 것은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어선 외곽에 둔다’고 기록한 미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극비문서 ‘NSC-48/2’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고 키신저는 지적했다. 이 문서는 소련을 위해 일한 영국 정보부 출신의 이중스파이 도널드 매클린이 소련에 넘긴 것이었다. 키신저는 한반도 공산화와 중국의 소련 의존도를 높이는 데 실패한 스탈린이 ‘한국전쟁 최대 패배자’라고 평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