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화음 ‘노래하는 천사들’… 세계 곳곳 복음 무대 ‘생 마르크 합창단’

입력 2011-05-18 18:09


15일 오후 3시를 조금 넘기자 흑진주 같은 아이들과 백옥 같은 아이들이 대형 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다. 약간 긴장한 듯 보이는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경기 부천시 처음교회 안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남자 11명, 여자 15명으로 구성된 프랑스 생 마르크 합창단원이다. 남자 여자로 나뉘어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사이 건장한 체격의 지휘자 니콜라 포르트(48)와 반주자 니콜라 마르텡 비즈카이노(30)는 본당으로 들어섰다.

무대 옆 피아노 건반을 몇 개 눌러본 비즈카이노는 전혀 조율이 돼 있지 않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포르트도 휑한 무대를 본 순간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처음교회의 전 스태프가 동원돼 조명, 음향, 피아노조율을 마치자 어느새 화려한 무대로 변신했다.

오페라 의상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본당으로 조용히 들어와 앉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리허설이 시작됐다. 여자 솔로가 앞으로 나와 ‘넬라판타지아’를 불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음정, 박자가 어긋났다. 중간에 합류하는 남자 솔로는 들어가는 부분도 파악 못하고 어물댔다. 실망스러웠다.

지휘자가 계속 아이들을 지적하자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갔다. 1시간 여의 리허설을 마친 후 포르트와 인터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넬라판타지아’ 무대를 보니 걱정된다고 운을 뗐다. 그럼에도 포르트는 여유있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본 공연에 들어가면 아이들의 파워 있고 아름다운 화음에 놀라실 겁니다. 리허설은 원래 제일 부족한 부분을 연습하는 것이라서. 주최 측의 요청으로 3일 전부터 넬라판타지아를 연습했어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의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생 마르크 합창단은 빈소년합창단, 파리나무십자가합창단과 함께 세계 3대 소년소녀합창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두 합창단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진다.

“생 마르크 합창단은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화 ‘코러스’ 이후 대중적인 이미지로 전 세계에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어요. 120여년 전통의 리옹 소재 생 마르크 칼리지에 소속돼 있는 합창단으로 10세부터 15세 사이의 소년소녀들로 구성했어요.”

이 합창단은 1986년 지휘자 포르트에 의해 창단됐다. 창단 배경을 묻자 프랑스 역사까지 들먹였다.

“18세기까지 프랑스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프랑스 국민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리옹은 신앙의 깊은 역사와 고전적인 멋을 지닌 곳으로 유명합니다.”

거의 모든 프랑스 가정 자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산다고 한다. 그도 아기였을 때 세례를 받았다.

“하나님 말씀을 단지 종교로서 한정해 받아들이기보다는 내 삶 전체, 혹은 가정교육의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지요. 부모님은 올바르고, 경건하고 그리고 굳세게 기르시며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하셨어요.”

신앙적 토양에서 자란 포르트는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 어머니이고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어머니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와 누나 둘, 그리고 남동생 한 명의 단란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시청공무원이었던 아버지, 평범한 주부였지만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던 신앙심 깊은 어머니. 그 어머니는 바로 위 누나와 함께 교회에서 반주 연습을 하곤 했다. 하교 후 곧장 교회로 달려간 그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교회 마당에서 놀곤 했다. 교회 안에서 들리는 합창단의 노래를 좋아했고 합창단 연습이 다 끝나면 어머니가 누나와 함께 피아노와 노래 연습을 시켜주었다.

“주일마다 합창단의 곡을 듣고 감동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과 은혜에 행복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행복을 주는 합창부 단원이 부러웠어요. 어머니가 저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리옹합창단 학교에 입학시켜주셨어요.”

합창단이 가진 매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덕분에 유년시절 합창단 학교에서의 생활은 정말로 행복했다고 회고한다. 15세가 되어 합창단 학교를 마치고도 피아노와 보컬 공부를 계속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보컬 공부를 하며 피아노를 중심으로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대학 3학년이 되자 그가 음악에서 추구하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소년소녀합창단의 공연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합창단을 생각하게 되고 지휘 공부까지 하게 됐다.

그러던 중 생 마르크 칼리지에서 그를 찾아와 생 마르크 합창단 창단을 제안했다. 그렇게 합창단은 탄생했다.

그는 청년 시절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오던 어느 토요일, 광장에서 소년소녀 합창단원이 부르는, 때 묻지 않은 목소리와 기교를 부리지 않는 음색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던 장면을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제가 꿈꾸는 합창단은 사람들에게 클래식뿐만 아니라 신앙이 잊혀져 가는 세상에서 데모소리, 총소리가 아닌 소년소녀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목소리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울려 퍼지게 하는 것입니다.”

공연을 시작하는 오후 7시를 20분 남기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본 공연이 시작됐다. 브뤼노 쿨레의 ‘너의 길을 보아라’를 부르는 순간 또 한번 놀랐다. 기우였다. 영혼을 울리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하모니였다. 계속해서 클래식 음악, 성가곡,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오페라로 만든 현대음악, 영화 ‘코러스’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을 들려주었다. 앙코르 곡으로 준비한 ‘마법의 성’을 부르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어 ‘넬라판타지아’도 완벽하게 마치고 마지막 곡으로 대장금 OST ‘오나라’를 부르자 교인들의 떠나갈 듯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교인들은 객석을 떠날 줄 몰랐다. 넬라판타지아가 잔잔히 흐르는 영화 ‘미션’처럼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는 노래하는 천사들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이들은 19일 부산, 21일 경기도 용인 공연을 마치고 24일 프랑스로 돌아간다.

부천=글 최영경 기자·사진 서영희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