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프롤로그] 기억컨대 훅 지나가더라

입력 2011-05-18 18:07


성년식을 치른 딸이 요즘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유치원 보조교사를 하는데, 지난 4월 제 생일에 딸에게 남방을 선물 받았습니다. 꼬마들 뒤치다꺼리하며 번 돈으로 아빠에게 선물한 딸이 고맙고 안쓰러웠습니다.

하여 그저께 밤 딸을 백화점으로 불러 브랜드 T셔츠를 사주고, 태국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런 식의 ‘제대로 된 선물’은 처음입니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딸아이와 일본을 며칠 여행하고 싶습니다. “아빠, 그때 내 친구도 같이 가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지만요. 아무튼.

심리학을 공부해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딸,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를 권하는 아빠. 적당한 긴장감이 있긴 하지만 꿈을 놓고 부녀가 서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입니다. 잠잘 무렵 아이 방을 가보면 큐티를 하고 있고, 주말엔 영어예배와 교회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한 주 한 주 충실하게 사는 딸입니다. 반면 부끄러운 아빠입니다.

기억컨대 훅 하고 지나가더라는 겁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무렵만 해도 시간을 제법 가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추억을 쌓지 못했습니다. 훅 지나가 아이가 성년이 되어버린 거지요. 또 훅 지나가 품을 벗어날 거고요. 그걸 후회할 것 같아 여행을 목표로 잡습니다.

멋진 기장 박래백씨의 애달픈 이야기가 가슴에 닿는 것은 각자마다 가족에 대한 진한 사랑과 그리움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령 그 가족이 ‘웬수’ 같은 상처만 남겼다 할지라도 그립고 애달픈 건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지으신 아버지’께선 그래도 사랑하도록 만드셨으니까요. 이것이 우리가 받은 유전자입니다.

이번 호에는 묘하게도 삶의 운행이 모두 담겨 있네요. 신앙으로 한평생 사신 우리 시대 아버지 박춘수 장로님, 듬직한 가장 박래백씨, 결혼을 맺어주는 장경윤씨, 생 마르크합창단 어린이들….

아카시아꽃이 곧 피겠습니다. 5월이 열흘 남짓 합니다.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