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성경문답] 기독교 교리 72가지 문답 형식으로 쉽게 정리
입력 2011-05-18 17:56
셩경문답(로스 지음, 메리 스크랜튼 옮김, 1895)
‘셩경문답’은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를 펴냈던 선교사 로스가 영문으로 쓴 것을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순한글로 번역 간행한 전도책자이다. 이 책자는 1895년 발행되었지만 그 전에 ‘크리스도쓰셩교문답’(1890)과 ‘셩교문답’(1893)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바 있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72가지의 문답 형식으로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아 1920년대에도 발행될 정도로 지속적으로 널리 읽혔다.
책자의 내용은 천지 만물의 근원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1문 : 천지만물이 어찌 하여 있느뇨? 답: 하나님이 지어내신 바라.
2문 : 하나님은 뉘시뇨? 답: 신령하고 형용이 없어 나타나지 아니하시니 시종 없고 능치 못한 바 없는 것은 하나님의 총명이니 알지 못하는 바 없느니라.
7문 : 어찌 하여 하나님을 아느뇨? 답: 지은 바 일을 보면 그 능간함과 지혜를 알고 하나님이 주신 성서를 보면 더욱이 아느니라.
계속해서 구약과 신약, 아담의 타락, 인류를 멸망시킨 홍수와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축복, 십계명의 의미, 예수의 만민 구속, 신자가 지켜야 할 도리 등을 설명한다. 책자의 말미에는 주기도문이 실려 있어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메리 스크랜튼은 1885년 53세라는 늦은 나이에 한국에 선교사로 왔다. 그녀는 40세에 남편과 사별한 후 교회 활동과 전도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고 미국 감리교 해외여선교회의 임원으로 활동했다. 1884년 이 선교회는 스크랜튼을 조선 파견 선교사로 임명했다. 이때 그녀는 의사인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 부부를 설득하여 함께 와서 선교 활동을 벌였다. 윌리엄 스크랜튼은 의료 선교사업에서 큰 공적을 세웠고 메리 스크랜튼은 복음 전파와 함께 여성 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불평등한 유교 사회에서 공적인 활동이 배제된 채 집안에만 갇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절감한 메리 스크랜튼은 그 극복 방안으로 기독교를 통한 여성 교육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여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몰이해와 심지어 선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을 노예로 외국에 팔아넘긴다는 헛소문까지 나도는 상황에서 천대받는 소외 계층이나 빈곤층의 소녀들을 중심으로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바로 1886년 이화학당의 출범이었다. 이 학교는 이듬해 고종으로부터 ‘이화’라는 교명을 하사 받은 이후 양반의 자녀와 부인들도 학생으로 들어오고 일반인들의 호응이 높아짐에 따라 크게 번창해 갔다. 이외에 초등교육기관인 공옥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상동교회 내에 여자중학교를 세웠으며 여성 선교를 위한 부인성경학원을 개설하여 감리교협성여자신학교로 발전시켰다.
또한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여관’을 설립하여 의료 선교에 앞장섰다. 전도사업에도 힘을 써 정동에서 여성들만의 주일학교를 조직하여 여성교회로 발전시켰고 동대문교회를 개척했으며 상동교회의 여성 교인 수를 크게 늘렸다. 당시 기독교가 여성들에게 널리 퍼진 데에는 스크랜튼이 뽑아서 교육시킨 전도부인들의 활약이 큰 힘이 되었다. 스크랜튼은 그 활약상을 이렇게 보고한 바 있다. “그들은 책보따리를 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걸어다닌다. 기회가 오는 대로 하늘나라의 좋은 씨앗을 흩뿌린다. 그들은 우상을 파괴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온전한 사람으로 되어갔다. 또한 여성들에게 읽는 것을 가르쳐서 여성들 마음속에 있는 열망을 일깨우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여성 교육과 선교에 헌신했던 스크랜튼은 1909년 10월 서울 자택에서 별세했고 서울 합정동 양화진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부길만 교수(동원대 광고편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