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지상의 방 한 칸
입력 2011-05-18 17:52
나른함이 느껴지는 늦봄의 나날이네요. 봄맞이는 다들 잘하고 계신지요. 제가 살고 있는 작은 골목길은 다가구 주택이 올망졸망 모여 있어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한 곳입니다.
이사를 가고 오는 사람들로 큼지막한 짐차들이 골목을 오가는 날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살던 곳을 떠나 낯선 집으로 가는 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집과 이웃을 만나게 되는 설렘을 갖게 되니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요.
부엌도 없는 최 집사님… 반지하 수영 엄마
방에 누워서 양팔을 벌리면 벽과 문에 팔이 닿는 아주 작은 방에서 살고 계시는 최 집사님의 소망은 몸을 돌려도 벽이 닿지 않는 방에서 사는 것입니다. 부엌시설이 없어서 작은 툇마루에 도마를 놓고 칼질을 하며 부탄가스 난로로 식사를 끓여 드시는 집사님은 싱크대 두 칸짜리 주방에서 편하게 당신이 좋아하는 김치부침을 지져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슬하에 자녀가 없고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시는 집사님은 기초수급권자에게 분양되는 임대아파트에 몇 번씩이나 응모했으나 아파트 하나에 수백명이 몰리는 치열한 경쟁에 늘 밀리고 있다고 하십니다.
여름 장마철이면 밤잠을 설치는 수영이 엄마는 남매와 함께 수년째 반지하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영세민에게 보조해주는 전세자금으로 얻은 방입니다. 남매가 초등학교도 가기 전 홀로 되어 단돈 9만원을 들고 상경했는데 이제 큰아이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먹고살기 버거워 전셋집 마련을 위해 돈을 모으는 일은 꿈조차 꿀 수 없었노라고 이야기합니다. 수영이 엄마는 나라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이사했으나 적은 돈에 맞추다 보니 반지하방을 구하게 되었답니다. 겨울에 이사를 해서 그렇게 곰팡이가 많이 끼어 있는 줄 몰랐답니다. 습기가 가득한 방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와 비가 조금만 와도 하수가 역류하여 집안은 수시로 물바다로 변하곤 한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방 열 개가 있는 집을 하나 달라고 떼를 쓰고 싶습니다.
튼튼한 싱크대를 달고 따스한 물이 잘 나오는 햇살이 가득한 아담한 집은 최 집사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맛난 반찬을 만들어 교회식구와 함께 나누면서 기뻐하시는 집사님의 환한 얼굴이 눈에 선하네요.
수영이네는 방이 두 개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들아이에게 방 하나를 주고 수영이와 수영이 엄마는 한 방을 쓰면 되니까요. 습한 곳에서 오래 살면서 생긴 허리통증이 없어질 수 있게 난방이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야 할 경호와 재형이가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들어와서 다리 쭉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경호는 몸이 찬 편이니까 무엇보다 햇빛이 잘 드는 따스한 방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몸집이 큰 재형이는 형과 함께 살아야 하니까 넓고 큰 방이 하나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방 열 개 있는 집’ 주십사 떼써봅니다
준영이네는 준영이 외삼촌이 퇴원을 하면 함께 살아야 하니까 방이 세 개는 되어야 합니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외삼촌은 혼자 방을 써야 하니까요. 아참 준영이 엄마가 좋아하는 다육이 화분을 많이 놓을 수 있게 바람이 잘 통하는 넓은 베란다가 있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도 방을 하나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결혼 후 50년 동안 한 번도 아내와 헤어져 살아본 적이 없는 아버지는 지난겨울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이제야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시는 것 같네요. 여든의 연세이시긴 하나 아직은 웬만한 집수리쯤은 너끈히 감당하실 수 있는데 아버지에게 일거리를 주는 곳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사시면서 이곳저곳 집을 고쳐 살만한 집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방이 열 개 있는 집을 주십사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