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승부사들의 야유회
입력 2011-05-18 17:24
프로기사 가족과 한국기원 직원 150여명이 지난 16∼17일 파주에 위치한 유일레저타운에 모였다. 한해에 한번 열리는 기사야유회는 최고령인 1937년생 최창원 6단부터 최연소인 1996년생 최정 초단까지 모든 기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뜻 깊은 자리이다. 매년 10여명의 기사들이 새롭게 입단을 하지만 시합에서 잠깐 잠깐 얼굴을 볼 뿐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기회를 통해 선후배 사이의 정을 돈독히 할 수 있다.
점심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야유회는 명랑운동회로 시작됐다. 세 팀으로 나누어 진행된 운동회는 큰 상금과 상품이 걸리진 않았지만 승부사들이 모인만큼 다들 전력투구하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운동회는 실력보다는 팀워크를 중시하는 6인7각, 단체줄넘기, OX 퀴즈, 계주 등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게임으로 진행됐다.
6인7각 경기에서는 평소 냉철한 승부사의 모습을 보여주던 기사들이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여 좌중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매 경기마다 팀에서 출전 선수를 뽑을 때는 그동안 갈고 닦은 수읽기를 이용해 선수선발을 하고 점수를 계산했다. 일종의 기사 직업병이라고 할까? 마지막으로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인 계주가 이어졌다. 각각 50∼60세 3명, 여자 4명, 남자 6명의 선수를 뽑아 승부를 다투었다.
미세한 계가바둑에서 한 순간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승부처. 다시 승부사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계주에서는 최근 바둑계의 무서운 신예로 떠오르고 있는 안성준 김동호 이호범 황진형이, 여자기사로는 김윤영 김혜림 문도원 디아나 등이 바둑실력 못지않은 스피드를 자랑했다. 한바탕 신나게 운동을 하고 저녁은 바비큐 파티로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다.
어린 시절부터 프로를 준비하며 함께 달려온 동료이자 라이벌들이 이제는 프로가 되어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그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인생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바둑의 승부 앞에서는 꺾고 올라서야 하는 상대이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가장 힘이 되는 소중한 동반자들이다.
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한 연구생 시절부터 오랜 시간 많은 승부들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한판의 승부로 입단이 좌절되기도 했고, 몇 억원의 상금이 걸린 시합에서 패하기도 했지만 반상을 떠나면 승패를 잊고 다시 웃고 떠들며 함께 할 수 있다는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매번 정직한 승부 속에서 나만큼 나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 함께하기에 처절한 승부의 세계에서도 살아갈 힘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