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무화과처럼
입력 2011-05-18 18:45
민수기 13장 23∼27절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한국처럼 경이적인 부흥과 성장을 가져온 나라와 민족은 드뭅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교회는 여러 윤리적 문제로 암울함을 떨쳐버리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징인 무화과를 통해 마음의 옷깃을 여미어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무화과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옵니다. 무화과는 구약 시대 가장 대표적 식물이었으며 예수께서 선택하신 유일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어원적으로 무화과란 히브리어 ‘쉬크마’, 헬라어 ‘쉬케’, 영어의 ‘fig tree’로, 우리나라에서는 뽕나무로 번역되기도 하며 ‘꽃 없는 열매’로 해석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상징인 무화과처럼 꽃을 열매 속에 조용하면서도 알차게 피움으로써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예수님의 나무, 곧 무화과가 나무가 될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화과는 어떤 용도로 사용됐으며,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첫째, 무화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양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배고프고 굶주린 자들에게 배를 채워주는 양식이 무화과였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당신의 양식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마 26:26). 오늘 우리도 무화과 되신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양식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둘째, 무화과는 광야 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초로 사용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을 때에 무화과 뭉치를 종처에 바르자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이는 곧 성도들이 세상의 부정과 부패에 빛과 소금으로 병든 곳을 치유하는 삶을 살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가정이나 교회 그리고 나라에서 성도의 역할이 치료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셋째, 무화과는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꽃은 피우되 겉으로 화려하게 피워서 자태를 뽐내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화려한 축복의 꽃, 사랑의 꽃, 영광의 꽃을 무화과 열매 속에 피운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겸손의 가르침을 무화과에 비유하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꽃을 밖으로 드러내며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처럼 “외적으로 흠모할 것 없는” 수수함과 소박함, 온유함, 겸손함을 무화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솔로몬왕도 잠언 18장 12절에서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하였고 잠언 29장 23절에서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빌 3:17)는 바울 사도의 권면은 오늘 한국교회를 향해 ‘꽃 없는 열매’ 무화과처럼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꽃을 피울 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며, 꽃을 피우지 않는 염세주의 타계주의자도 아닌 겸손하면서도 열매 맺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좀 더 겸손하게 세상의 양식, 치료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믿음의 애국자와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가 됐던 신앙의 선각자들처럼 무화과의 사명을 다한다면 한국교회는 동방의 횃불이자 서방교회의 새로운 도전이 될 것입니다.
양기성 목사 청주 뉴월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