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여왕 ‘100년만의 아일랜드 행차’
입력 2011-05-18 00:48
가깝고도 먼 나라 영국과 아일랜드. 런던에서 더블린까지의 거리는 비행기로 채 1시간도 안 걸리지만 국왕이 아일랜드 땅을 밟는 데는 100년이 걸렸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의 초청으로 17일(현지시간) 아일랜드를 국빈 방문했다. 영국 국왕의 아일랜드 방문은 1911년 여왕의 할아버지 조지 5세 이후 100년 만이다. 현지 언론들은 “새로운 역사와 미래를 향한 초석”이라며 방문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여왕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는다”며 테러를 경고했다. 16일에는 더블린 외곽의 한 버스에서 사제 폭탄이 발견돼 아일랜드 내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 상태다.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 역사적 방문을 감행한 85세의 여왕은 아일랜드 상징색인 초록색 의상을 입고 케이스먼트 공항에 내렸다. 영국이 처형한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로저 케이스먼트의 이름을 딴 공항이다. 테러 위협으로 양국은 경호에 총력을 기울였다. 공항에서 더블린 시내 대통령궁으로 이동하는 주요 도로에는 경찰이 철통 경비를 서는 가운데 철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됐고, 상가는 문을 닫았다. 아일랜드는 총 경찰 병력의 3분의 2인 8000명을 경호에 투입했다. 또 아일랜드 군대와 영국 왕실경호대를 포함, 경호에 동원된 인력은 총 1만명이며 경호비용은 총 3000만 유로(462억원)가 들었다.
여왕은 궁에서 환영행사를 마친 뒤 독립전쟁에서 숨진 아일랜드 병사들이 묻힌 전쟁기념공원을 찾아 헌화했다. 기념공원방문 시에는 조의를 뜻하기 위해 크림색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여왕 방문에 앞서 기념공원 주변에서는 방문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60여명의 시위대가 영국 국기를 불태우며 경찰과 대치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구원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일랜드는 750여년간 독립투쟁을 벌였다. 특히 16세기 가톨릭에서 영국성공회로 개종을 강요받자 거세게 저항했다. 1922년 독립 후에도 양국은 북아일랜드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여 왔으나 최근 화해 모드로 접어들었다. 영국은 막중한 부채에 시달리는 아일랜드에 저리 차관을 제공하기도 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