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송주명] 일본의 양대 미래전략 충돌
입력 2011-05-17 17:43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된 지난 11일 일본정부는 원전정책 기본방침을 발표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원전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안전성을 확립하는 한편 재생가능에너지를 대안으로 개발할 것임을 천명했다. 일본의 국가에너지전략은 현재 전력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을 2030년까지 50%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간 총리의 발표로 예정된 14기의 원자로 건설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10일 간 총리는 지진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주부(中部)전력 소속 하마오카(浜岡) 원전의 가동을 중지시켰다. 주부전력 측은 총리의 ‘요청’에 반대를 표명하였으나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이를 수용하였다. 하마오카 원전 가동중지는 시민운동가 출신 간 총리의 ‘진보성’이 드러난 상징적인 실천이었다.
지금 일본에서는 원전정책의 재검토 과정에서 ‘제조업주의’와 ‘인간환경주의’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미래전략이 충돌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모노즈쿠리’로 대표되는, 세심히 품질을 연마하는 ‘제조업주의’ 사회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제조업주의는 원자력을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로 간주하고 기저부하(基底負荷)로 하는 전력생산체제를 낳았다.
도전받는 제조업주의
따라서 일본의 제조업주의를 대표하는 게이단렌(經團連)과 자민당은 정부가 원전가동을 중단시킨 데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제조업주의는 정부에서도 뿌리가 깊다. 원전을 관리하는 경제산업성은 하마오카 원전만을 가동 중지시키는 것으로 현재 원전체제에 ‘면죄부’를 주려 하고 있다. 원전 사고로 인간의 생존이 크게 위협받고 있지만 제조업주의라는 종래 패러다임은 재앙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가로막고 있다.
간 총리의 원전정책은 일본의 경제 및 사회생활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해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관심을 모으는 이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다. 그는 재일한국인으로 비주류였고, 일본의 IT 업계를 선도해온 인물이다. 일본의 제조업주의로부터 자유롭고 미래산업을 대표하는 그는 재앙이 발생하자 100억엔이라는 거액을 기부하는가 하면 일본사회의 새로운 비전을 앞서서 제시하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자연에너지재단’을 설립하겠다고 선언하고 간 총리의 원전정책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다.
전후 경제성장과정에서 일본인들의 의식에 뿌리 깊게 자리한 제조업주의는 재난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사회체제를 구상하기보다는 빠른 경제·사회적 회복, 즉 원상복귀에만 몰두하고 있다. 인간환경주의는 초기단계이지만 일본사회가 양적인 성장전략에서 벗어나 생명과 환경을 중시하는 체제로 거듭날 것을 요구한다.
앞으로 일본 정당정치의 제약으로 제조업주의에 사로잡힌 자민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직 소수라도 인간환경주의는 오늘날 많은 일본인들의 마음에서 움트기 시작하고 있다. 토머스 쿤의 말처럼 지배적 패러다임은 일거에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다.
인간환경주의의 浮上
이번 달 21, 22일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일본에서 열린다. 일본의 원전재검토 정책과 인간환경주의 패러다임의 등장은 동아시아에 커다란 파장을 던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의 세 가지 협력과제가 검토돼야 한다.
첫째, 동아시아지역 차원의 원전정책에 대한 재검토와 원전의 단계적 감축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둘째, 당면한 원자력의 대안으로 주목되고 있는 천연가스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동시베리아-동아시아 에너지개발협력 및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재가동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자연에너지 협력 등 기후체제에 대한 동아시아 차원의 지역협력이 구체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송주명(한신대 교수·일본지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