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굴업도의 운명
입력 2011-05-17 17:51
인천에서 남서쪽 98㎞, 덕적도에서 13㎞ 떨어진 굴업도는 뱃길 따라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섬이다. 면적은 1.7㎢, 해안선은 12㎞에 이른다. 오랜 풍화를 거친 바위들이 많아 지질학의 교과서로 꼽힌다. 섬을 구성하는 7개 봉우리의 능선이 아름답고 해변의 모래는 곱다. 가을에는 강아지풀을 닮은 수크렁이 우거진다.
섬이 일반에 노출된 것은 두어 차례다. 1990년 방폐장 부지로 선정된 안면도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자 94년 겨우 아홉 가구만 사는 굴업도를 선택했다가 해저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철회했다. 다음으로는 굴업도 땅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CJ그룹이 2000년부터 레저단지 개발사업을 추진하다가 반대운동에 밀려 2006년 계획을 접은 바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굴업도에 새 소식이 전해졌다. 2014 아시안게임을 준비 중인 인천시가 관광단지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다 골프장, 콘도, 관광호텔, 마리나, 생태학습장 등 대규모 휴양단지를 조성해 아시안게임에 맞춰 준공한다는 일정이다. 시민사회가 자연을 파괴한다며 비난하고 나섰음은 물론이다.
반대그룹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문화예술인 150명이 결성한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의 모임’이다. 지난 주 고궁박물관에서 출범식을 가진 이 단체는 천혜의 보물섬을 예술섬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모임에는 연출가 표재순, 건축가 김원, 사진작가 배병우 등 비정치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더욱 신뢰가 간다.
이들이 모델로 제시한 곳은 일본의 나오시마섬과 독일의 인젤 홈브로히 미술관이다. 나오시마섬은 안도 다다오와 이우환 등 거장들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 곳곳에 깔려 있다. 예술과 관광의 결합이 성공한 케이스로 한국 지자체 공무원들의 발길이 잦다. 지금도 서남부 지역에선 ‘한국의 나오시마’를 외치는 소리가 높다.
독일 뒤셀도르프 인근 노이스시에 자리한 홈브로히 미술관은 늪지에 지어진 11개 벽돌 건물로 구성됐다. 미술에 관한 선입관을 비우라는 뜻에서 첫 건물을 빈 공간으로 두었거나, 작품에 일체의 설명문을 없앴다는 점 등이 특이하다. 갈대숲에 자리 잡은 식당은 경내 밭에서 재배한 식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준다.
굴업도의 미래는 어떨까. 땅의 성격으로 봐서 그냥 놔두지는 않을 것 같아 제안하는 것이 휴양섬과 예술섬의 공존이다. 기계적인 중립이라고 욕먹기 십상이지만, 두 콘셉트가 적대적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