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대입에 반영되나” 학부모들 사교육 기웃
입력 2011-05-17 17:25
교과부 2011년 도입한 ‘독서이력제’ 藥될까 毒될까
서울 중랑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김모(14)군은 이번 학기부터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독서교육시스템·reading.go.kr)에 한 달에 2∼3차례 독후감을 올리고 있다. 김군의 어머니는 “좋은 대학에 가려면 책을 많이 읽어 기록에 남겨야 한다”며 지난 3월부터 김군을 독서학원에 다니게 했다. 고전소설을 비롯해 읽지 않던 교양서적도 보게 됐다. 하지만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인터넷에서 본 서평을 참고하거나 학원강사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다. 학원강사는 읽으면 좋은 책을 선정해 주고 책의 중요한 내용은 무엇인지, 감상문은 어떻게 써야하는지 가르쳐준다. 김군은 “독서이력제 때문에 읽고 싶은 책보다 학원에서 권하는 책을 읽게 된다”며 “쓰라는 대로 감상문을 쓰지만 내용이 이해되는 건 아니다”고 불평했다.
◇책 읽는 습관 가르치기 위한 독서이력제, 취지는 동감하지만…=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3월부터 전국 초·중·고교 학생의 독서교육을 관리하기 위해 독서교육시스템에 독후감 등을 입력하는 ‘독서이력제’를 도입했다. 독서교육시스템에 올린 감상문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기록하는 ‘에듀팟’에 그대로 옮길 수 있는 연계시스템도 구축했다. 에듀팟은 대입전형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에듀팟과 독서교육시스템의 연계 때문에 독서 자체가 입시용으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최근 교과부는 독서이력 관리는 독서교육시스템에서만 하도록 개선안을 만들었다. 교과부 관계자는 “독서교육시스템은 이용을 원하는 학생이 독서에 활용하는 자율적인 시스템”이라며 “입시에 반영될 것이라는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서교육시스템에 남는 이력은 어떤 식으로든 대입에 반영될 것이라는 게 현장 분위기다. 서울 강남의 한 독서학원 강사는 “독서가 중요한 만큼 실시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면서도 “학교에서 아이에게 책 읽는 법을 먼저 가르쳐준 뒤 독서이력제를 도입했어야 하는데 순서가 뒤집혀 역효과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서력 부족한 아이 때문에 사교육에 눈 돌리는 부모들=아이들의 독서이력을 관리하는 제도가 도입되자 부모들은 좋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독서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독서교육시스템이 대학입시와 관련 없이 독서를 지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지만 학생의 전반적인 학습활동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를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 입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독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1 자녀를 둔 김정아(38·여)씨는 “독서기록을 남기면 입시에서도 지원한 학과 공부와 관련된 책을 읽었는지 기록을 볼 수 있다”며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독서 이력을 관리해야 입시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학생들이 인터넷에서 접하는 짧은 글에 익숙해져 장문의 책을 스스로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루미 독서논술 김창환 대표는 “요즘 아이들은 책읽기도 인터넷 검색하듯 제목과 핵심내용만 알려고 한다”며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독서력이 부족해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해외의 독서교육…지역사회 중심, 아기 때부터 책 읽는 습관 강조=미국 영국 핀란드 등에서는 지역사회 중심의 독서운동이나 어릴 때부터 독서 습관을 들이는 교육을 중요시한다. 우리나라 독서교육이 다독(多讀)과 평가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과 대조된다.
미국 시카고시는 2001년부터 시 도서관과 함께 ‘하나의 책, 하나의 시카고’라는 지역 독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로 구성된 도서선정위원회는 ‘시민이 매일 접하는 보편적인 문제를 반영한다’ ‘다른 언어로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의 기준을 충족하는 책을 정한다. 학교에선 학년이 다른 두 학생이 독서 경험을 공유하는 책 파트너 제도를 실시한다.
영국은 민간단체가 아이들에게 책을 공급하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 서적상연합이 주도하는 ‘북토큰 운동’은 셰익스피어 생일인 4월 23일 어린이에게 책을 사도록 1파운드 동전을 나눠주는 행사다. 북 트러스트(Book Trust)라는 단체에서 실시하는 ‘북스타트 운동’은 ‘베이비팩(생후 12개월까지)’ ‘플러스 팩’(생후 30개월까지) 등 성장 단계에 맞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핀란드 일본 프랑스에서도 독서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