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베드로 (13) 재정난에 학교·쉼터 통합 운영키로

입력 2011-05-17 17:58


프랑스 바텔(vatel)호텔학교는 전 세계 많은 젊은이가 호텔리어의 꿈을 안고 모여드는 유명한 곳이다. 학비가 싼 편인데도 2년간 공부를 마치려면 8000만원이 필요했다. 내겐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이곳에 합격한 딸도 학비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선화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거야. 우리 함께 기도하자.”

마음이 편안하고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정말 천사를 보내 주셨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을 통해 딸의 학비를 해결 받게 된 것이다. 그분들의 요청이 있어 누군지 밝힐 순 없다. 마음을 비우고 이삭을 바치는 아비의 심정이 되었더니 딸이 원하는 공부의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나는 조선족 전도에 더 열심을 냈다.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주로 조선족이 사는 4구역 지하실을 헤매고 다니며 전도했다. 한 주에 평균 10명을 목표로 7년간 전도했으니 내가 복음을 전한 사람은 줄잡아 2300여명 정도가 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는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새벽마다 기도했다. 그런데 올림픽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온통 공사 중인 데다가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물가도 뛰어 생활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환율도 1위안당 120원에서 200원이 훌쩍 넘으니 신학교 운영이 어려워졌다. 후원금 월 80만원은 학교가 내는 월세의 절반도 안 됐다. 학교와 쉼터를 운영하는 데 최소한 매달 300만원이 필요했다. 설상가상으로 6명의 하숙생 중 3명이 한국에 가는 바람에 집안 살림도 어렵게 됐다.

결국 학교와 쉼터를 합치기로 결정하고 이사했다. 책걸상과 비품을 그대로 두고 나올 수밖에 없어 너무 속상했다. 신경을 많이 썼는지 새벽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아들까지 폐수막염에 걸려 함께 입원했다. 나는 7층, 아들은 5층 병실에 있는데 두 곳을 오가는 아내의 마음은 정말 죽고 싶었다고 한다.

선교가 열정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돈을 벌어야 했다. 베이징에서 발간되는 한 잡지의 본부장으로 취직해 열심히 뛰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덕분에 신학교 및 쉼터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

조선족 아주머니들과 청년들은 요리 강습과 영어, 컴퓨터 학습을 통해 지속적인 전도를 하고 있었지만 조선족 아저씨에 대한 전도가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이들은 아내가 돈벌러 간 사이 한적한 곳에서 장기와 마작을 하거나 술과 담배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노숙자 사역을 하는 목사님을 만나게 돼 이들을 위한 수련회를 마련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큰 별장을 빌려 3박4일간 진행키로 했는데 57명이 참석했다. 그저 놀러 가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찬양과 율동, 성극, 간증 등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준비한 상태였다.

도착하여 식사를 하는데 술을 달라고 했다. 술은 절대 안 된다고 하자 몇 명이 소동을 부렸다. 그리고 20여명이 떠났고 다음날 아침에는 6명만 남고 모두 가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쉬웠지만 6명을 대상으로 최선을 다했다. 3일 후에는 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계속해서 교회를 다니겠다고 했다. 60명을 대상으로 준비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그 혜택은 6명이 누렸고 복음의 열매도 이들이 땄다.

결국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해 놓아도 그것을 집어먹지 않으면 맛을 알 수 없듯 복음도 마찬가지이다. 스태프가 참가자보다 훨씬 많았던, 캠프가 끝날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