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0조원 베팅… 개미는 줄줄이 손실

입력 2011-05-16 18:51


‘폭탄 사고’ 계기 들여다본 파생상품 시장

지난 12일 서울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사제폭탄 폭발 사건의 피의자 김모(43)씨는 전형적인 소액 개인투자자였다. 옵션 만기일 전날 코스피200 풋옵션 상품인 ‘277풋’과 ‘275풋’을 5000만원어치 사들였다. 코스피200 지수가 277이나 275보다 낮게 내려가야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12일의 종가는 278.90이었다.

국내 파생상품 시장은 평균 거래량 2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한탕주의’의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사제폭탄 폭발 사건까지 일어날 정도로 부작용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파생상품 시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증시에서 불공정거래의 최근 급증세는 파생상품 시장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6일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에 따르면 주식워런트증권(ELW)을 포함한 파생상품 불공정거래 혐의 건수는 2009년 27건에서 지난해 66건으로 144% 증가했다. 대량의 허수 호가를 내 시세를 조정하거나, 매수를 한 뒤 공모자끼리 모여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가장하는 수법이 주로 적발됐다. 단타성 매매로 주가를 부풀린 사례도 있었다.

같은 기간 동안 유가증권시장 불공정거래가 103건에서 59건으로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ELW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불공정거래 혐의 건수도 따라 늘어났다. ELW는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나타내는 상품이다. 폭발 피의자 김씨도 결국 시세 조종으로 반사 이익을 노렸다.

특히 전문성 없는 ‘개미’들이 투기에 빠지면 고스란히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파생상품 시장은 주가가 오르면 주주가 모두 수익을 얻는 주식시장과 다른 ‘제로섬 게임’ 형태의 시장이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고수익만을 꿈꾸며 수익 확률이 극히 낮은 가격대의 상품만을 주로 매수하고 있다.

이러한 투기 행태는 하루 30조원 수준으로 커졌다. 한국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200 선물을 하루 평균 27조4517억원, 코스피200 옵션은 1조2104억원 거래하고 있다. 옵션만기일인 지난 12일 개인의 옵션거래액은 1조5000억원에 달했다. 투자자들이 주식선물·국채선물은 외면하고 코스피200 선물·옵션에만 몰두한 현상도 투기 행태를 반영한다.

지난해 11월 ‘옵션 쇼크’부터 최근 밝혀진 SK 최태원 회장의 대규모 투자 손실에 이르기까지 파생상품 시장의 불안정성은 계속 언급되고 있다. 유독 파생상품 시장에서 부작용이 많은 것은 적은 금액으로도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은 “불공정거래를 꾀하는 이들은 현물 증권보다 낮은 비용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베팅 금액이 작아 실패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태도가 미처 성숙하기 전에 시장이 기형적으로 커진 점도 한탕주의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남 실장은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속도를 모니터링·제도 개선 노력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