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종자 프로젝트’ 상황… “더는 안뺏긴다” 세계 ‘종자전쟁’ 반격 나서다

입력 2011-05-16 21:55


2008년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국제안전중복보존소’로 지정됐다. 지진 등 천재지변과 핵전쟁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 인류의 생명을 유지할 식물 종자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로 인정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두 번째다.

2009년부터는 우즈베키스탄, 미얀마, 베트남, 케냐, 브라질 등 원시 자연 상태가 많이 남아 있는 국가들에 우리 종자 연구 인력들이 직접 나갔다. ‘합법적’으로 다른 나라의 종자를 연구하고 개발해 종국에는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길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 산천에 널려 있던 다양한 야생 종자를 선진국 종자 기업들에 선점당했던 한국의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기후변화 등으로 식량 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종자 개발과 확보는 농업의 생존을 떠나 각국의 생존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발맞춰 종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국내 종자 시장은 아직 전 세계 종자 시장의 1.2%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강한 종자는 국가 자산=농진청 관계자는 16일 “개도국에 농업기술을 주면서 ‘공동연구’라는 이름으로 현지 종자를 수집하는데, 과거 선진국이 우리 종자를 빼간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야생종 확보가 중요한 것은 기존에 이미 연구된 종자들이 갖고 있는 한계를 열어 줄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후 조건이 다른 지역의 종자는 우리나라의 기후 조건이 급변할 경우 적응할 품종 개발에 역할을 할 수 있다. 크고 질이 좋은 사료용 곡물 확보는 90% 이상 수입에 의존하는 동물용 사료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적극적인 수출 전략이나 점차 강화되는 우수 종자에 대한 로열티 비용 측면에서도 우수한 국내 품종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해외농업기술개발(KOPIA) 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확보해 온 종자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얀마에서 수집한 콩 종자는 단백질 함량도 보통의 콩에 비해 월등히 높고 베트남 야생에서 확보한 수수 종자는 당도가 보통의 수수보다 배 이상 높다. 과거 통일벼의 경우 필리핀에서 확보한 벼 종자를 일본에서 들여온 종자와 교배해 우리의 종자로 재탄생시켰다. 거봉보다 알이 큰 흑구슬 포도나 청양고추, 한라봉 등도 해외 종자를 들여와 교배시킨 종자들이다.

◇여전히 영세한 국내 종자 시장=우리 정부는 지난해 ‘종자 수출 2억 달러, 세계 5대 유전자원 강국 실현’을 목표로 종자 분야 연구개발에 1조488억원을 집중 투자키로 했다. 농진청 농업유전자원센터도 2500개에 달하는 새 품종을 개발·보급해 왔다. 그러나 우리 종자 시장 자체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국제종자연맹(ISF)에 따르면 전 세계 농작물 종자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420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우리나라 종자 시장 규모는 5810억원 수준(약 5억 달러)에 불과하다. 벼 보리 콩 감자 등 주요 식량작물 종자를 국가 주도로 발전시키면서 민간 종자업체들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 더욱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당시 매출액 1∼3위 국내 종자기업들이 세미니스, 노바티스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에 팔려나가면서 민간 영역이 위축됐다. 시장이 열악하면 연구개발도 탄력을 받기 어렵다. 로열티를 둘러싼 국제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종자 연구·관리·공급 체계를 단계적으로 민간 영역으로 옮기기로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채소·화훼류의 경우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관리되고 이미 민간화된 상태”라면서 “다만 우리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수준이라 종자를 개발하고 관리·보존할 시설이나 연구인력을 확보할 능력이 없어 판매자로만 머무르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