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법률시장 개방] 영국 대형로펌 7월 국내 상륙… 법률시장 지각변동 오나
입력 2011-05-16 21:48
국회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오는 7월부터 우리나라 법률시장이 개방된다. 전 세계 법률시장을 양분하는 미국과 영국의 대형 로펌 가운데 영국 로펌의 국내 상륙이 먼저 시작되는 것이다.
영국의 한 로펌 소속 변호사는 16일 “영국의 5대 로펌을 의미하는 ‘매직 서클’ 중 링클레이터스, 클리퍼드 챈스, 앨런 앤드 오버리 등은 서울사무소 설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연간 2조원대의 국내 법률시장은 2009년 5월 아세안(ASEAN) 국가에 문호를 개방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 등록한 아세안 변호사는 없다.
◇법률시장 개방은 5년간 단계적으로=법률시장이 개방돼도 당장 외국 로펌과 변호사가 마음대로 국내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방 대상은 기업인수·합병(M&A) 등 계약 관련 자문 업무다. 소송 등 송무는 제외된다. 앞으로 2년은 EU 회원국 변호사의 국내 취업과 외국 로펌의 국내 사무소 설치만 허용된다. EU의 변호사와 로펌은 변호사가 아닌 ‘외국법자문사(FLC)’로 활동한다. 이들은 변호사라는 명칭을 쓰더라도 원 자격국 명칭을 병기해야 한다. 국내법 사무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3년 7월부터 3년간 해외 로펌은 국내 로펌과 함께 국내 및 외국법 사무가 혼재된 사건을 공동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2016년 7월부터는 국내 로펌과의 합작회사 설립을 통한 국내 변호사 고용이 가능하다. 해외 로펌 단독으로 직접 국내 변호사를 고용할 순 없지만, 해외 로펌은 이때부터 국내 법률시장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계 대형 로펌 역시 같은 단계를 거쳐 국내에 진출한다.
◇엇갈리는 위기론과 낙관론=국내 법률시장 개방이 임박하자 변호사 숫자만 3000여명에 달하는 영국의 주요 로펌은 서울에 사무소 설치를 준비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영국의 10대 로펌은 대부분 국내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적지 않은 숫자가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EU 회원국 중에는 영국이 해외시장 공략에 유달리 적극적이다. 따라서 국내 법조계에선 ‘한·EU 법률시장 개방=영국 로펌의 국내 진출’이 성립한다는 시각이 많다.
국내 법률시장의 판도는 어떻게 변화할까. 여기에는 위기론과 낙관론이 엇갈린다. 우선 해외 로펌이 국내 형사사건 등 송무는 맡지 않는다 해도 거액의 수임료가 오가는 대기업의 국제금융 거래 관련 사건은 다르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영국 로펌이 사실상 싹쓸이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기업이 경험 많은 외국 로펌을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법률시장이 해외시장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임료 역시 더욱 비싸질 것이라는 예상도 무시하긴 어렵다. 법무법인 화우의 변동걸 파트너변호사는 “국내 로펌들이 대기업 자문 시장을 외국 로펌에 빼앗기면 국내 송무 분야에서 과열 경쟁이 일어날 수 있고, 이 경우 국내 로펌은 물론 개인 변호사들까지 연쇄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법률시장 개방이 국내 변호사 업계를 초토화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계 로펌의 한 변호사는 “2년 정도 지나야 가시적인 변화가 있겠지만 그것도 외국과 관련된 투자나 금융시장 자문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로펌이 무턱대고 들어올 만큼 한국 시장의 가치가 크지 않고 그것도 송무 분야까지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