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J씨의 사랑이야기’주연 박나리·슬기 자매 “함께 같은 곳 바라보며 발레리나의 꿈 키웠죠”
입력 2011-05-16 18:12
“학교 다니는 내내 언니는 제 우상이었어요.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줄 알았고, 나도 언니만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발레를 했지요.”
국립발레단 소속 발레리나 박나리(28)·슬기(25) 자매를 지난 13일 저녁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마른 몸, 긴 팔과 다리, 하얀 피부까지. ‘발레리나’의 이미지에 걸맞은 청초한 첫인상과는 달리 수다와 음식을 좋아하는 또래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가 그러는데 일반인보다 저희가 두 배는 먹는대요.”
두 사람은 20, 21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국립발레단의 창작발레 ‘컨버댄스(Converdance)’ 중 ‘J씨의 사랑이야기’에 동반 출연한다. ‘J씨의 사랑이야기’는 다분히 연극적인 성격을 띤 실험성 짙은 무대. 언니와 동생이 각각 주연급으로 캐스팅돼 화제를 낳고 있다. “저는 20대의 사랑을, 언니는 30대의 사랑을 연기해요. 기존 발레와는 다르게 밀고 때리고 치는, 일상적인 모습이 많이 나와요.”(슬기)
자매가 처음 발레를 접한 것은 나리씨가 9살이었을 때다. 다른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발레학원을 통해서였다. 입시나 경쟁과는 무관하게 취미로 시작했으나, 언니와 동생이 둘 다 재능을 보여 발레리나의 길을 걷게 됐다.
나리씨는 싱가포르 발레시어터에서 2년 반 가량의 활동기간을 거쳐 지난해 국립발레단에 정단원으로 입단했고, 대학(한예종)을 조기졸업한 동생 슬기씨는 2007년에 이미 입단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니었다고 한다.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자매에게 돈이 많이 드는 발레를 시키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기 나름인데, 정말 돈이 많이 들어요. 레슨비, 콩쿠르 출전비용 등…. 엄마가 한번은 ‘언니가 하고 있으니 너는 다른 길을 가는 게 어떠니’라고 물으신 적도 있어요.”
그러나 자매에게는 발레를 하는 것보다 발레를 안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자매는 서울의 예중·예고를 다니면서 두 시간 가량을 매일 통학에 할애했다.
스트레스는 없을까. 어딜 가나 ‘누구 언니, 누구 동생’ 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테고,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매는 “서로의 존재가 힘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백조의 호수’ 공연 때 스페인 공주 역에 더블 캐스팅이 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공연 중에 갑자기 발목이 삐끗해버린 거예요. 그런 게 단원들 사이에서는 정말 미안한 일이거든요. 아파도 참고 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너무 아파서 막이 바뀐 사이에 동생이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공연했어요.”(나리)
언젠가는 둘이 함께 창작발레의 안무를 만드는 것이 꿈. 같은 길을 걸어온 자매이지만 미래의 목표는 조금 달랐다. “‘어디까지 올라가야겠다’하는 생각은 없어요. 발레를 하는 게 즐겁고 좋거든요. 감정 표현을 무대에서 할 수 있다는 게 좋고요. 관객이랑 같이 호흡하면서 계속 발레를 하고 싶어요.”(나리),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외국에 나가서 생활해보고 싶어요.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많잖아요. 경험해보고 싶기도 하고요.”(슬기)
이들은 가족이자 친구였고,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서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동생은 좀 독한 면이 있어요. 저는 무슨 일이 닥치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하는 스타일인데 슬기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점에서 저보다 나아요.”, “언니는 적응력이 빨라요. 저는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고 안주하는데….”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