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찰 행정의 오점으로 남은 ‘3색 신호등’

입력 2011-05-16 17:50

말이 많았던 ‘3색 신호등’ 추진이 전면 보류됐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어제 “3색 화살표 신호등을 확대 설치하는 계획을 보류한 뒤 시간을 갖고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재검토’라는 여운을 달았지만 국민의 절대 다수가 찬성할 때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미여서 사실상 전면 폐지를 결정한 것이다. 3색 신호등이 운전자의 혼란을 불러일으킨 게 사실인 만큼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 하겠다.

3색 신호등은 지난달 20일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이 시작될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새로운 신호체계에서 가장 헷갈렸던 건 빨간색 신호등에 켜지는 화살표였다. 좌회전 금지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화살표를 보고 운전하는 데 익숙한 운전자들로서는 방향 지시로 오인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사고 유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사전 홍보도 부족했다. 근본 문제는 국민의 안전 및 생명과 직결되는 신호체계 개편을 경찰이 충분한 검토와 의견 수렴 없이 진행시켰다는 점이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여론의 질타가 잇따른 이유다.

게다가 지난해 1월 ‘좌회전 후 직진’에서 ‘직진 후 좌회전’으로 교통체계를 변경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납득하기도 어려웠다. 별 문제가 없는데도 또 다시 신호체계를 바꾸려 하자 신호등 제작업자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경찰이 그제야 시민 여론을 듣기 위해 지난 13일 공청회를 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방청객 96명 가운데 찬성 48명, 반대 47명, 무응답 1명으로 과반 지지를 획득하는 데도 실패했다. 조 청장이 “찬반이 비슷하게 갈린다면 추진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바 있어 대세는 이때 판가름 났다.

뒤늦었지만 3색 신호등 폐지 결정을 내린 건 다행스럽다. 사고 예방 및 시민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혈세를 낭비할 필요도 없어졌다. 물론 경찰 행정의 오점으로 남겠지만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정책을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정책은 여론 수렴을 통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