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후쿠시마 제2원전은 왜 무사했을까

입력 2011-05-16 18:07


‘소-테-가이(想定外).’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를 비롯, 도쿄전력의 책임자들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제기했던 표현이다. 직역하자면 ‘상정 밖’. 규모 9.0의 지진과 수십m에 이르는 쓰나미는 예상 밖의 엄청난 재해였기에 정부로서도, 원자력발전소 운영 회사로서도 속수무책이라는 뜻이다. 약간은 면피성 수사(修辭)인 듯 싶다.

지난 3일 서울에서 한국 주재 일본 대사관이 주관한 ‘동일본 대지진 관련 설명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도 ‘소-테-가이’란 표현은 빠지지 않았다. 설명회는 후쿠시마 제1원전 상황, 일본 정부의 식품 안전성 확보 노력, 일부 지역을 제외한 일본 내 화물수송 및 여행의 안전성 등에 대한 것이었다.

예상 밖의 재해 수준이라서?

같은 내용의 설명회가 지난달 21, 27일에 각각 중국 베이징과 태국 방콕에서 열렸다.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에 대한 공포로 치자면 설명회는 일본과 가장 인접한 나라인 한국에서 제일 먼저 열렸어야 했다. 일본 정부가 사태 수습의 우선순위 선정에 또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재해 복구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전 사고 수습이다. 지난달 17일 도쿄전력이 내놓은 사고 후 복구 로드맵에 따르면 방사성 물질 배출통제 완료 시점을 내년 4월로 잡고 있지만 ‘소-테-가이’ 식의 발상이 남아 있는 한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불과 10㎞ 떨어져 있는 제2원전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를 경험했지만 제1원전은 사고로 이어졌고, 제2원전은 무사했다. 실제론 제2원전도 지진 발생과 더불어 가동이 멈췄고 1∼4호기 중 3호기를 빼곤 모두 해수펌프 모터가 고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제2원전은 제1원전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도쿄전력이 자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제2원전의 비상용 발전기는 기밀성(氣密性)이 높은 원자로 건물 내부에 있어 쓰나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제2원전은 원자로 냉각장치가 차질 없이 작동돼 현재 안전하게 냉온정지 상태다.

‘소-테-가이’를 주장하기 전에 제1원전에 대해서도 제2원전과 같이 냉각용 발전기의 기밀성을 유지하는 보강공사를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참화는 면할 수 있었을 터다. 다시 말하면 후쿠시마 제2원전은 최악의 지진·쓰나미를 상정하고 있었지만 제1원전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억측일지 모르겠으나 원전회사 즉 도쿄전력이 엉뚱한 데 돈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설비 보강이나 안정성 강화에는 소홀했던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자민당 5선의 고노 타로(河野太郞) 중의원의원은 도쿄전력을 포함한 일본의 전력회사가 지나치게 많은 광고비를 쓴다고 지적한다.

광고보다 안전에 투자해야

그에 따르면 2007년 광고비 지출 1위는 도요타자동차로 1054억엔, 도쿄전력은 18위로 286억엔이었다. 다만 도쿄전력을 포함한 10개 전력회사와 일본원자력발전㈜의 총 광고비는 1000억엔을 웃돌아 세계의 도요타와 맞먹는다. 전력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일본의 전력회사가 왜 그렇게 많은 광고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니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고 원전건설 당위론을 펴기 위한 광고 공세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오죽했으면 도쿄전력의 시미즈 마사타카(淸水正孝) 사장은 50년 전통의 일본광고학회 회장을 맡아왔을까. 요즘 일본에서는 그간 주요 언론매체들이 전력회사의 광고 공세로 인해 원전 문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것은 아니냐는 주장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진정으로 안전을 생각한다면 결코 ‘소-테-가이’ 식의 언변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면교사를 바로 곁에 두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원전 인식은 이대로 좋은 것인가.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