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동재] 애물단지 가마솥
입력 2011-05-16 17:37
충북 괴산군 동부리 청결고추유통센터에 2005년 설치된 초대형 가마솥이 끝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당시 4만여명의 군민들에게 한꺼번에 식사를 대접하게 될 것이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한 차례도 실행하지는 못했다. 제대로 밥을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져 옥수수와 팥죽 등을 끓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마솥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부식되는 문제까지 발생하자 군은 최근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활용방안 공모를 시작했다.
중앙과 지방의 각급 행정기관 수반들이 앞 다퉈 자신의 치적을 알리기 위해 벌이는 희한한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09년 전국에서는 무려 921개의 지역 축제가 열렸다. 축제 내용이 겹치거나 정작 그 지역의 특색과 무관해도 ‘저질러놓고 보자’는 식으로 뛰어들었다. 결과는 뻔했다. 일부는 관광객을 끌어모아 이익을 내기도 했지만 상당수 지역은 사후에 빚잔치를 벌였다. 최근 각 지역이 주요 축제의 옥석을 가리기로 하는 등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전북의 경우 68개나 난립했던 축제가 올해 51개로 줄었지만 “아직도 많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각급 기관장들의 ‘얼굴과 이름 알리기’ 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민선 자치시대를 맞아 남발되는 홍보·선심성 행사는 더욱 극성을 부린다.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에도 TV 드라마와 영화 세트장 건립에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하는 행태는 현재진행형이다. 드라마가 끝나면 세트장이 흉물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짝 인기에 편승해 다음 선거에서 표심을 잡는 데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모양이다.
유가 폭등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자 정부는 기름값 잡기에 나섰다. 결국 정유4사가 ℓ당 100원씩 할인을 실시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값이 내렸다지만 별반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할인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는 점도 불만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이번 인하 조치는 7월 6일이면 끝난다. 시중에서는 벌써부터 “그 이후에는 한꺼번에 가격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무성하다. 하지만 당국은 “그것은 정유사가 판단할 문제”라며 발을 빼는 모습이다.
상식과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보여주기식 이벤트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미혹하게 하여 속이는 혹세무민(惑世誣民)과 다를 바 없다. 이는 서민들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정부는 매년 2월쯤 전년도 세입세출 결과를 발표한다. 2010년도의 경우 세금 수입이 늘고 정부 지출이 줄어 7조8000억원의 세계잉여금이 발생했다. 세금이 더 많이 걷혔다는 얘기다. 우리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거의 20%에 달한다. 특히 봉급생활자들의 경우 ‘유리알 지갑’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올 정도로 세금을 꼬박꼬박 바쳐야 한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겉치레 전시행정으로 인해 낭비되는 예산만 없더라도 민초들의 부담이 조금이나마 줄지 않을까.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출신인 공자는 일찍이 세금으로 인해 고통 받는 서민들의 애환을 절감했다. 천하를 떠돌던 공자는 제자들과 산둥(山東)성에 있는 태산 옆을 지나다 무덤 앞에서 통곡하고 있는 한 부인을 보게 됐다. 부인이 이들 일행에게 털어놓은 사연은 애처로웠다. 옛날에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숨지고 지난해에는 남편, 이번에는 아들이 똑같은 변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섭다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공자의 권유에 대한 부인의 답변은 더욱 기가 막혔다. “그것은 이곳에 살고 있으면 무거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하편은 당시 공자의 가르침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라는 말을 잘 새겨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이동재 선임기자 dj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