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황야의 樂聖’

입력 2011-05-16 17:35

주위를 둘러보면 노소(老少)에 관계없이 영화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음악을 들으면 영화에서 받은 감흥과 감동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것은 물론 그 영화를 보던 시절의 추억까지 떠올라 좋다는 게 나이 지긋한 층의 애호 이유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음악 중에는 그 자체로 주옥같은 명곡들이 즐비하다.

아마도 그래서 옛날 영화를 보지 못했을 젊은이들도 영화음악은 좋아하는 것일 게다. 언뜻 생각나는 것들만 해도 한때 KBS-TV 명화극장의 시그널 음악으로도 유명했던 고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작곡자 맥스 스타이너)가 있고, 애잔한 트럼펫 선율이 일품인 ‘길’과 ‘태양은 가득히’(이상 니노 로타)가 있다.

그런가하면 대서사극의 웅장함을 고스란히 전해준 ‘아라비아의 로렌스’(모리스 자르)도 있고, ‘티파니에서 아침을’(헨리 맨시니), ‘야성의 엘자’(존 배리), ‘러브 스토리’(프란시스 레이)처럼 감미롭고 서정적인 걸작들이 있다. 광대무변한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흥분감을 느낄 수 있는 ‘스타워즈’(존 윌리엄스)의 멋진 음악은 또 어떤가.

이처럼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낸 기라성 같은 영화음악가 중에서도 우뚝한 존재가 어제부터 세 번째 내한 공연을 하고 있는 엔니오 모리코네다. 국내 언론들이 공연 소식을 전하면서 그를 ‘영화음악의 전설’ 심지어는 ‘영화음악의 신’으로까지 일컬었지만 50년 전 데뷔 당시 그는 초라한 무명 음악가에 불과했다. 그런 그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 바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4년작 ‘황야의 무법자’다.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의 효시인 이 영화와 그에 이은 ‘석양의 무법자’ ‘속 석양의 무법자’ 등 ‘달러 3부작’에 쓰인 모리코네의 음악은 종래 서부영화의 음악, 예컨대 ‘하이눈’ ‘OK목장의 결투’(이상 디미트리 티옴킨)나 ‘셰인’(빅터 영), ‘황야의 7인’(엘머 번스틴) 등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기존 서부영화 음악들이 시정 넘치거나 컨트리풍이 대부분이었다면 모리코네의 음악은 애상(哀想)에 행진곡조, 거기다 코믹함까지 뒤섞은 희한한 것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당시 국내 영화 광고 카피는 모리코네를 ‘황야의 악성(樂聖)’이라고 묘사했다. 절묘한 표현 아닌가. 물론 모리코네는 이후 웨스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에서 명곡을 양산해냈다. 이제는 가히 ‘영화계의 악성’이라 불려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인의 갈채를 받는 모리코네 같은 영화음악가가 나오길 기대한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