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베드로 (12) ‘정규 신학교 설립’ 기도 응답을 받다

입력 2011-05-16 18:02


베이징 사랑의 쉼터를 섬기면서 조선족교회를 주일마다 순회했다. 예배 후 담임교역자와 교제하며 느낀 것은 신학적 지식이 부족해 목회하기가 아주 힘들다는 것이었다.

내가 주로 찾아간 두 곳의 조선족 담임목사들도 정규 신학 과정에서 배운 분들이 아니라 통신과정이나 몇 목사에게 커리큘럼도 없이 배운 게 전부였다. 그러니 목회 계획도 없었고 성도들 양육은 물론 교회절기 행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이곳에 정규 과정의 개혁주의신학교가 필요하다고 느낀 뒤 기도에 들어갔다. 심장 수술 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불쑥 이곳에 왔던 터라 신학교를 설립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기도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 주셨다. 칼빈대를 졸업한 뒤 틈틈이 캐나다 크리스천칼리지 한국분교 학위 과정을 이수했던 나는 2005년 학위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캐나다로 가야 했다. 사실 경비 때문에 못갈 형편이었는데 누가 부담을 해주었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러 오신 J목사님과 방을 함께 쓰게 됐다. 내 마음은 온통 베이징 신학교 설립에 가 있어서 새벽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속 기도했다.

“서 원장님, 무슨 기도를 그렇게 간절히 하십니까?”

“신학교 설립을 위해 기도합니다. 조선족들을 신앙으로 잘 이끌어줄 교역자가 꼭 필요합니다.”

내가 베이징에서 왔고, 자세한 사역 이야기를 들은 J목사님은 깜짝 놀라며 자신은 이미 중국 동북지역에 신학교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이징에도 학교를 하나 세울 계획이라고 했다. 순간 기도응답이라는 생각이 들어 학교설립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2개월 후 J목사님은 동역하시는 두 분 목사님과 함께 베이징을 방문했다. 사랑의 쉼터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집회도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가실 때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는데 2주 후 신학교 설립을 지원할 터이니 학생을 모집하라고 연락을 주셨다. 할렐루야!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세계를 향해 나간다는 뜻으로 열방신학교라고 이름을 붙였다. 학교 설립의 응답을 캐나다에서 받은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학교가 이제는 한족을 위한 신학교 등 3곳으로 늘어나 운영되고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다.

정신없이 전도하며 조선족 사역을 하다보니 가정에는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아내가 하숙을 하며 그 수입으로 살았고 가장 역할을 전혀 못했다. 어느 날 딸 선화가 학교 졸업장이 없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학비가 없어 학교를 계속 보내지 못했던 것이 이유였다. 한어수평고시(HSK) 6급이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데도 딸은 중국어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10급을 땄었다.

호텔리어가 꿈이었던 딸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러 한국으로 나가야 했다. 난 새벽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언제까지 물질로 이렇게 어려움을 주시려는지 한탄 섞인 기도를 했다. 딸이 떠난 지 20여일 후 하나님께서 창세기 22장의 말씀을 주셨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는 내용이 아닌가.

“딸을 학교 보내지 못한 그 정도 갖고 뭘 원통해서 그러느냐. 그러는 네가 무슨 선교를 한다고 하느냐?”

하나님께서 내게 질책하시는 듯한 말씀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오버랩되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오히려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딸에 관한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딸은 한국에서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뒤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어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어느 날 딸이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했다.

“아빠, 나 프랑스 바텔호텔학교에 합격했어. 입학 전형에 통과됐어요.”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