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100)
입력 2011-05-16 11:27
설문해자(說文解字)와 성서
천상병 시인의 친구인 召南子 김재섭 선생은 내게 金文新考라는 오래된 중국의 글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신 분이다. 金文學者인 낙빙기(駱憑箕) 선생과 연결해 주어서, 중국과의 교류가 있기도 전에 편지를 주고받는 기쁨도 누렸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려면 몇 가지의 공구(工具)가 있어야 하는데, 한한 대자전과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자전이다.
설문해자는 후한시대 중반기인 서기 100년 무렵 허신(許愼)이란 문자 학자이자 경학 연구자가 완성한 불후의 한자 사전인데, 당시 통용된 한자 9353자를 표제어 항목으로 세우고 그 뜻과 자형을 분석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그 뜻을 정확하게 아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다. 신학 공부는 변방에 두고 이런 잡다한 학문에 미쳐 날뛰던 때, 김재섭 선생과 함께 서울대학의 인문대학장을 찾아뵈었던 적이 있다. 그분은 한국 상고사가 전공인 학자셨는데 아마도 산해경 18장에 있는 ‘朝鮮’이라는 언어의 해석 때문에 뵈었던 듯하다. 그 때 거기서 설문해자(說文解字)의 주해가 필요하다는, 보통사람들의 정신적인 진화를 돕기 위해서도(이게 뭔 이야긴지는 한글로 된 설문해자를 읽는 분들은 아시게 된다) 누군가 주해를 해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젊은 여성학자가 9353개의 전서로 된 글자 중에 540자를 풀어서 책으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 책을 어제 주문했다는데 오늘 받았다. 책을 주문해준 이가 어지간히 닦달 아닌 닦달을 한 모양이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빨리 읽지 못하면 숨 넘어 갈지도 모른다는, 뭐 이런 애교 듬뿍한 압력(?) 같은 거 말이다. 서고에서 설문해자 원판을 꺼내 먼지를 털었다, 광풍처럼 살았던 지나간 날들이 물기 촉촉한 봄 하늘처럼 가슴을 적신다. 지내놓고 보니 삶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목사 노릇에 ‘설문해자’가 무슨 보탬이 될까 싶었는데, 문자에 매달리지 않고 전체를 읽는 눈을 필요로 하는 성서 탐독과 해석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호 4:1)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