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리콴유 시대’ 막 내리다… 2대 총리 고촉동과 내각서 은퇴 공동 발표

입력 2011-05-15 21:40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李光耀·87) 초대 총리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리콴유는 14일 2대 총리를 지낸 고촉동(吳作東·69)과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이제는 젊은 세대가 나서야 할 때”라며 내각에서 물러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두 사람은 총리직을 그만둔 이후에도 각각 고문 장관과 상위 장관을 맡아 왔다. 특히 1959년부터 90년까지 31년간 총리로 재임한 리콴유는 고촉동에 이어 아들인 3대 총리 리셴룽(李顯龍·59) 시대에 와서도 ‘상왕(上王)’으로서 사실상 총리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정계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싱가포르 정계에 세대교체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리콴유의 퇴장은 지난 7일 실시한 총선의 영향으로 보인다. 당시 총선에서 50년 이상 집권해 온 인민행동당(PAP)은 전체 87석 중 81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하지만 사실상 1당 독재라는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여당 득표율이 60.1%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야당인 노동당(WP)은 역대 최대인 6석을 차지했다.

리콴유는 1923년 싱가포르로 이주한 부유한 중국계 가문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가 된 그는 노동운동에 뛰어들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54년 인민행동당을 창당했고, 59년 싱가포르 영연방 자치령의 초대 총리가 됐다. 또 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90년까지 총리직을 유지했다.

그는 “서구의 민주주의는 아시아에 맞지 않는다”며 통치 이념으로 ‘유교적 권위주의’를 표방했다. 부패행위조사국을 설립하고 공직자 급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로 만들었다. 또한 범죄를 없애기 위해 마약 및 무기 소지에 사형을 선고하고, 약물 중독이나 기물 파손 등 경범죄에 태형을 가하는 등 엄격하게 법을 집행했다.

그는 총리 재임 동안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싱가포르를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0%가 넘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반열에 올려놨다. 개발독재라는 비판도 많지만 세계적인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싱가포르를 만든 성과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평생 “청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자녀나 형제들은 싱가포르 내에서 대부분 고위 관리로 재직하거나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가족들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성과”라며 특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