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동물방출 생태계 교란 심각… 왕우렁이 등 6년새 364만여마리 야생으로

입력 2011-05-15 18:44


1989년 한 항공사가 제주도 취항 기념으로 까치 53마리를 한라산국립공원에 풀었다. 처음엔 길조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제주도에는 내륙 자생종인 까치의 천적이 없었다. 지난해 수십만 마리까지 불어난 까치는 전신주에 둥지를 틀어 정전사고를 내고 귤 같은 농작물을 파먹었다. 제주도는 2000년부터 까치를 유해야생조수로 지정하고 퇴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볼거리 제공 등의 목적으로 야생에 풀어놓은 동물들이 골칫덩이가 돼 가고 있다. 해당 지역의 농산물을 훼손해 경제적 피해를 입히고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방상원 박사 연구팀은 2002∼2007년 국내에서 이뤄진 99건의 동물 방출사업을 분석한 결과, 총 45종의 동물이 야생에 방출됐다고 15일 밝혔다. 염소와 꽃사슴 등 포유류 9종, 독수리와 청둥오리 등 조류 7종, 금붕어와 잉어 등 어류 14종, 두꺼비와 개구리 등 양서류 4종, 도롱뇽 등 파충류 3종, 동남참게와 나비 등 무척추동물 8종 등이다. 파악된 개체 수만 해도 364만여 마리에 이른다.

방출 목적은 다양했다. 염소와 오리 등은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해, 반달가슴곰 등은 멸종위기종 복원을 위해, 꿩과 뱀장어 등은 생물자원화가 목적이었다. 관광자원화를 위해 꽃사슴과 산천어 등이, 생물다양성 증진 차원에서 개구리와 다슬기 등이, 종교 행사 중 자라와 붉은귀거북이 야생에 풀렸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농가 소득을 목적으로 서·남해안 50개 무인도에 방목된 염소는 섬에서 자생하는 고유 식물을 마구 먹어치우고 있다. 겨울 얼음낚시 행사 등을 위해 각 지자체가 대량으로 풀어놓은 산천어는 육식성 어류라는 특성상 주변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친환경 제초 수단으로 사용되는 왕우렁이는 어린 벼 잎과 습지 식물을 먹어치우고 농부에게 피부병 등을 유발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세계 100대 최악의 위해 외래종’으로 지정해 놓기도 했다. 반달가슴곰과 꽃사슴, 꿩, 고라니 등은 민가로 내려와 농작물을 훼손하기 일쑤다.

눈앞의 이익만을 노린 무분별한 동물 방출이 생태적·경제적·공중보건적 위험을 초래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방 박사는 “현행 야생동식물보호법은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된 동식물이 아닌 것들의 야생 방출을 규제하지 않는다”며 “안전한 방출계획 수립과 사후 위해성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