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전 5000만원 풋옵션 베팅… 주가폭락 한방 노렸다
입력 2011-05-15 21:32
‘사제폭탄’ 용의자 3명 검거… 왜 터뜨렸나
테러설까지 제기됐던 서울역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물품보관함 폭발사건은 주가지수 선물옵션 투자로 손실을 입은 40대 남성이 주가 조작을 위해 저지른 범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남성은 특정 일자에 주가가 폭락하면 큰 이익을 얻는 파생상품에 투자해 놓고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뒤 주가 하락을 노린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는 지난 12일 동자동 서울역사와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부탄가스를 이용한 사제 폭발물을 설치, 폭파시킨 혐의(폭발물 사용죄)로 주범 김모(43)씨를 검거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경찰은 또 폭발물 제조에 사용된 재료를 구입한 이모(36)씨와 폭발물을 차례로 물품보관함에 넣은 박모(51)씨를 폭발물 사용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씨와 박씨가 폭발물 제조나 운반 등의 사실을 모르고 범행에 가담했다며 불구속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선물옵션에 손을 댔다가 손실이 나자 폭발물을 터뜨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특수강도 혐의로 2006년부터 4년간 복역한 뒤 지난해 7월 출소한 김씨는 지인들로부터 3억300여만원을 빌려 같은 해 11월부터 코스피200 선물옵션 상품에 손을 댔다. 하지만 증권 관련지식이 부족했던 김씨는 투자 4개월 만인 지난 3월 투자액을 모두 날렸다.
김씨는 지난 11일 선물옵션에 5000만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이 상품은 특정 일자에 주가가 폭락하면 상당한 이익을 보는 풋옵션 상품으로, 지난 12일이 선물옵션 만기일이었다. 김씨는 공공시설에 폭발사건이 발생하면 주가가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이후 공공시설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나면 사회적 불안이 형성돼 주식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일 코스피200 지수는 전날에 비해 6.28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하락한 것은 맞지만 폭발의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상정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은 “피의자 김씨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흉내나 내보자’는 차원에서 범행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폭발물을 보관함에 설치한 박씨도 빚 때문에 범행에 가담했다. 강원도 정선군 강원랜드 인근에서 생활하며 전당포 ‘삐끼’로 일하던 박씨는 최근 수년간 도박으로 10억여원을 탕진하고 이혼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천만원의 빚 독촉에 시달리던 박씨는 김씨가 ‘가방을 물품보관함에 넣기만 하면 3000만원을 준다’고 하자 범행에 가담했다. 하지만 박씨는 김씨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폭발물인 줄은 몰랐다”며 “연막탄의 일종이라고만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사회적 파장이 커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고 사람이 다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며 “빚 독촉에 시달리다 보니 살고 싶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폭발물 제조 경위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배웠다”고 짧게 대답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