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정치권 ‘떼법’ 도 넘었다… 무조건 “우리지역에…” 외치며 툭하면 삭발·단식

입력 2011-05-15 21:12

국책사업 유치를 놓고 벌이는 지방자치단체 간의 지나친 경쟁이 ‘떼법’(법 적용을 무시하고 생떼를 쓰는 행동)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책사업을 놓고 ‘무조건 우리 지역’을 외치다가 다른 지역이 선정되면 선정 과정이 잘못됐다고 반발하는 식의 행태가 일반화되고 있다. 더구나 지자체장이나 정치인들이 앞장서 극단적인 행동으로 여론을 형성했다가 사업 실패 후 깊어진 갈등을 봉합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행태도 고착화되고 있다.

여기에 이를 조율해야 할 정부마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방 간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지자체장들은 사업 유치를 위해 극단적인 행동과 발언으로 저마다 ‘의지 보여주기’에 나섰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유치를 위해 지난 13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단식투쟁에 들어가고 이상효 경북도의회 의장이 삭발을 감행했다.

이에 앞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유치를 위해 전력을 쏟아온 김완주 전북도지사가 지난달 6일 전북도청에서 삭발을 하고 분산 배치를 강력히 촉구했다. 지난달 18일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장세환(전주) 민주당 의원이 LH 전주 이전을 요구하며 머리를 밀었다.

경기도 여주에서는 지난달 28일 김춘석 여주군수와 이범관(여주) 국회의원이 여주 공군사격장 이전을 촉구하며 삭발식에 참여했다. 양승조(천안) 국회의원도 지난해 1월 세종시 수정안 반대 투쟁을 하면서 삭발을 했다.

하지만 지자체장들의 이 같은 행동들이 포퓰리즘(대중주의)을 위한 정치적인 퍼포먼스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역 민심을 달래고 어루만져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대안 없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데 앞장선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동남권 신공항 사태 때 신공항 입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중대 결정을 내리겠다는 발언을 했으나 유치가 실패로 돌아간 뒤에도 ‘신공항을 끝까지 추진하겠다’는 말 이외에 어떤 결정도 보여주지 않았다. 대구시의회도 삭발 릴레이 등으로 결사항전을 외쳤지만 유치 실패 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영남 지역 의원들은 신공항 백지화 소식에 ‘대통령이 책임질 것’ ‘국토해양부 장관 등 청와대 인사 사퇴’ 등 거친 말들을 쏟아냈으나 일부 의원들이 긴급 대책회의에 불참하고 해외에 나가는 등 불성실한 모습을 보였다는 뒷말만 무성했다. 지역민들의 실망은 극에 달했지만 정작 앞장섰던 정치인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 같은 갈등이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어 지방 갈등에 한몫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김성수 대구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은 “내년 선거를 앞둔 지자체장 등 지역 정치인들은 객관적이고 실천적인 대안 제시 없이 막무가내로 유치전을 벌이고 있고 정부도 신뢰할 수 없는 독단적인 방법으로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지자체와 정부 모두 지역민들에게 불안과 실망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릋륰=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