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68) 화폐에 얽힌 뒷이야기
입력 2011-05-15 17:30
1957년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500환권 지폐(위 사진)에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 초상이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반으로 접을 때 대통령의 얼굴이 접히니 불경하다고 해서 59년에 발행하기 시작한 새로운 500환권에서는 초상이 오른쪽으로 옮겨졌답니다. 비록 지폐 속 초상이지만 대통령의 얼굴을 함부로 접을 수 없다는 이유로 수정판 신권을 발행한 것이랍니다.
60년대 율곡 이이의 초상이 새겨진 5000원권(아래 사진)은 국내에는 화폐 원판 제작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의 토머스 데레루사에 의뢰했지요. 그런데 인쇄를 하고 보니 율곡의 초상이 서양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판 제작자가 자기식으로 ‘서양 율곡’을 만든 것이죠. 이 돈은 77년 우리 기술로 5000원권이 발행되면서 80년에 발행 중지됐답니다.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통장을 보고 있는 그림이 있는 100환권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국민들의 저축심리를 높이기 위해 62년에 발행한 지폐입니다. 그러나 발행 20여일 만에 화폐개혁으로 인해 운명을 다하고 말았답니다. 해방 이후 발행된 화폐 중 최단 유통 기록을 갖게 됐지만 한국 화폐 사상 여성이 등장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답니다.
현재 발견된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는 고려시대(996년)에 만들어진 엽전 형태의 주화(鑄貨)랍니다. 앞면에는 건원중보(乾元重寶)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건원(758∼760)은 중국 당나라 때의 연호입니다. 그러나 뒷면에는 동국(東國)이라고 표시해 우리 화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구한말 상평통보 당백전과 이전오푼 백동화는 잘못된 화폐정책으로 고단한 백성들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이지요.
국립민속박물관이 오는 18일부터 7월 11일까지 ‘정성채 박사 기증 화폐 특별전-비록 돈이라 할지라도 아름답지 아니한가’를 개최한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특별전은 한국 성형외과 분야의 선구자인 정성채(89) 박사가 평생에 걸쳐 수집해 1992년 박물관에 기증한 2873건 4973점에 달하는 우리나라 화폐를 몽땅 선보이는 자리랍니다.
전시에 나오는 화폐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우리나라 선박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샘플로 들고 갔다는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권 지폐 등 사연도 가지가지입니다. 실용 화폐뿐만 아니라 길상 및 벽사와 관련된 문자와 문양이 다양하게 표현된 별전(別錢) 200여점도 함께 선보인답니다. 이처럼 다량의 별전이 한꺼번에 전시되기는 매우 드문 경우랍니다.
상거래가 실물화폐에서 카드, 인터넷 결제 등 무형의 화폐로 변화하는 시대에 화폐 자체가 지닌 미학적 디자인과 아날로그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할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더불어 국내 민속학과가 개설된 지 32년 만에 이 학과(안동대)를 졸업한 최초의 민속박물관장인 천진기(49) 관장 부임 이후 처음 열리는 기획전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광형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