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영범] ‘전관예우’의 근원적 처방

입력 2011-05-15 17:53


정부는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판검사, 공공기관의 변호사 등이 퇴직 전 1년간 근무하던 곳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사법개혁위원회의 당초 안은 3개월 유예기간을 두었으나 지난달 29일 국회 통과 과정에서 즉시 시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들의 매우 부정적인 정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수정 변호사법은 17일이나 18일 관보에 게재되면서 효력이 발생하는데, 대법원과 법무부는 법 시행 전 판검사가 사표를 제출하더라도 수리하지 않을 방침이다. 실제로 법무부는 이미 사표를 제출한 재경 지검의 부장검사, 평검사의 사표를 처리하지 않고 있어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전관예우의 특혜를 기대하고 있던 판검사 입장에서는 공무원으로 열심히 일한 일종의 사후(事後)적 보상을 박탈당하는 것이어서 억울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부실 저축은행과의 유착관계로 사회적 지탄이 된 금융감독원의 전관예우를 금지하는 법도 추진되고 있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직원들과 공무원 및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들이 퇴직일로부터 2년간 업무와 관련된 영리 민간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을 국회에 제출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차 의원에 의하면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99명이 관련법에 서명했다.

그러나 판검사 등 힘 있는 공무원의 전관예우라는 관행을 법으로 금지하는 이와 같은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예컨대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법무법인에 소속돼 있으면서 소송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자문 활동을 통해 조력을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수 있다. 또 판검사가 아닌 공무원의 민간 부문 진출을 제한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손익계산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해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앞으로 금감원 출신을 감사 후보로 추천하지 않기로 했고 금융기관의 상근감사를 없애는 방법도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해당 분야의 전문인을 배제한, 그리고 (이미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된)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자체 감사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공무원의 전관예우 관행이 근원적으로 치유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인사 관행 및 인사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 공직사회는 매우 폐쇄된 내부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소수에게만 진입의 기회가 있고, 치열한 승진 경쟁을 거쳐 탈락하는 경우 ‘후배를 위한 용퇴’라는 명분으로 자발적으로 퇴출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의 유관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으로의 전직은 대부분 이와 같은 조기 퇴직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전직한 공무원은 자기를 받아들인 민간기업의 구성원으로 과거 직장인 감독기관에 무리한 청탁을 하고, 앞으로 언젠가는 민간기업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직 공무원은 선배의 청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큰 과오가 없으면서도 후배가 승진했다는 이유만으로 용퇴를 강요받는 인사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사 선배가 후배 밑에서 자연스럽게 일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와 인사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진입 장벽도 완화돼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을 통해 일정 자격이 있는 변호사들을 법률시장에 많이 공급하는 것은 법조계의 폐쇄된 ‘끼리끼리’ 문화를 깨뜨릴 수 있는 궁극적인 대안이다. 금융감독권의 검사 독점권을 분산시키는 것도 중복검사의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과 함께 추진된다면 매우 바람직한 방안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처방은 퇴직 후 일정 기간은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 액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