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애다의 기도’는 기도하는 캠퍼스를 낳고…

입력 2011-05-15 17:38


(11) 이화여대 본관 ‘파이퍼홀’

지난 13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캠퍼스에 들어서니 이대캠퍼스센터(ECC) 위쪽에 자리 잡은 본관(파이퍼홀)이 눈에 들어왔다. 1935년 이대 캠퍼스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이 본관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파이퍼홀’(Pfeiffer Hall)로 더 유명했다.

본관 건축기금으로 12만5000달러를 쾌척한 미국인 파이퍼 부부를 기념해 붙인 이름으로 이들이 기부한 돈은 아직도 본관 수리 비용으로 쓰이고 있다. 파이퍼 부부는 1919년부터 1946년까지 세계 곳곳에 교육, 선교사업비로 16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파이퍼홀은 뛰어난 건축미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고등교육기관의 대표적인 건물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2002년 5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개성에서 가져온 화강암 사용=파이퍼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총 건평 4281㎡(1295평) 규모의 튜더식 석조 고딕 양식 건물이다. 튜더식 건축이란 장미전쟁 후에 즉위한 헨리 7세로부터 엘리자베스 1세 사이의 튜더 왕가 시절에 성행하던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전통적인 고딕양식에 르네상스 양식의 화려함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파이퍼홀은 고딕성당의 높은 첨탑과 뾰족한 아치 대신 납작한 아치와 네모난 창호가 독특하다. 이는 튜더식 건축이 낮은 학교건물에 적용되면서 변형된 결과다. 여기에 쓰인 화강암들은 모두 북한의 개성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본관의 전면 위쪽에는 십자가 조각이 부착되어 있어 이대가 기독교대학임을 상징한다. 이 십자가는 일제 말기에 없어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1966년 이화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흰 석조의 십자가가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됐다.

6·25 전까지는 이곳에서 전교생이 수업을 받았다. 문리대·정경대·법정대 건물로도 사용됐지만 현재는 총장실을 비롯한 행정본부로 사용하고 있다.

◇입구에 위치한 화제의 총장실=국내외를 막론하고 대개 대학 총장실은 본관에서 전망 좋은 층이나 안쪽에 자리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대 총장실은 여느 대학과는 달리 본관 1층에 자리잡고 있다. 1층 현관 입구 오른쪽에 위치해 수위실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집무실 공간도 그다지 넓지 않다.

이대 관계자는 “이대 신촌 캠퍼스를 건립한 앨리스 R 아펜젤러 총장이 학교로 들어오는 손님을 친절하게 모시자는 뜻에서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1층에 총장실을 마련했는데 이 같은 뜻을 그대로 이어받기 위해서 예전에 쓰던 그대로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3층 기도실에선 이화의 향기가 ‘물씬’=3층 중앙에는 이 건물에서 가장 돋보이는 공간인 ‘애다기도실’이 있다. 규모는 작으나 중앙에는 작은 제단과 성경을 두었고 천장에는 고딕 양식의 목재 지붕틀이 설치되어 있다. 마룻바닥에는 뾰족한 고딕 양식의 장식을 붙인 의자들이 놓여 있다.

기도실 한편 ‘기도 노트’에는 진지한 사연이 가득하다. 이화 캠퍼스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겠다고 또박또박 기록한 한 학생의 글이 눈에 띈다. 불확실한 미래지만 확실하신 하나님만 따라가게 해 달라는 졸업생의 고백도 있었다. 이대를 졸업한 어머니가 딸의 입학식에 왔다가 딸도 하나님께 올곧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는 60대 노 권사의 고백에서 이화 신앙의 전통이 묻어나왔다.

애다기도실은 이화여전 재학 중 1931년 하늘나라로 간 김애다 학생을 기념하는 기도실이다. 당시 난치병에 가까웠던 결핵에 걸린 그녀는 병상의 5년을 학교와 친구, 소외 이웃을 위해 중보 기도했다. 50년 6·25 때 건립 15년 만에 지붕과 기도실 등이 폭격으로 파손됐지만 53년 9월 복구 공사에 들어가 원형대로 복원됐다.

애다의 후예들은 80여년이 지난 현재 50여개의 이대 기도모임과 성경공부, 기독 동아리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총동창회선교부, 횃불회, 이화조이동문회, 유니게모임, 약대 동창회 선교부 등 10여개 동문 기도모임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 칸밖에 안 되는 작은 기도실이고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아 한가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의자에 앉아 기도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끔 기도하러 들른다는 김한나(26·자연과학대학원 박사과정)씨는 “혼자 조용히 앉아 마음을 가다듬기 좋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기도를 하고 나오던 방글이(24·행정학과4)씨는 “이화의 향기도 애다 선배를 기리려고 만든 이 기도실에서 시작됐을 것 같다”며 “애다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사람마다 소원하는 일들이 모두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