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에 안심말고 백의에 당황말자

입력 2011-05-15 17:27


측정 상황따라 수치 각각… 두얼굴의 고혈압

고혈압 환자 김모(54)씨는 최근 오락가락하는 혈압 때문에 본인은 물론, 담당 의사까지 애를 태우고 있다. 집에서 혈압을 재면 분명히 혈압이 높게 나오는데, 진료실에서 의사 또는 간호사가 재면 정상으로 나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모(49·여) 씨는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 고민한다. 이씨는 일상생활 중 집에서 혈압을 측정하면 늘 정상 범위를 유지하지만 어쩌다 병원에 갈 일이 생겨, 혈압을 재면 혈압이 비정상 수준으로 오르곤 한다는 것.

김씨는 이른바 ‘가면 고혈압’, 이씨는 ‘화이트 가운(백의) 고혈압’ 환자다. 세계 고혈압의 날(17일)을 맞아 진성(眞性) 고혈압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대처하기 쉬운 가면 고혈압과 백의 고혈압에 대해 알아본다.

◇가면 고혈압, 방치하면 심장혈관 질환 위험 높다=가면 고혈압은 ‘고혈압이 가면 뒤에 숨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병명이다.

일반적으로 비만이나 흡연자, 가정 또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 외부 활동이 많은 사람, 당뇨병 또는 고혈압으로 약물 치료 중인 사람들에게서 많다.

가면 고혈압 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겉으론 정상 혈압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순환기내과 김종진 교수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면 고혈압 환자군의 심장혈관 질환 발병 위험도는 30.6%로 진성(眞性) 고혈압 환자군(25.6%)과 백의 고혈압 환자군(12.1%), 정상인군(11.1%) 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혈압이 정상이란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 사이에 심장 근육이 점점 비대해지고(비후성 심근증), 경동맥 내강도 좁아져 심·뇌혈관 질환의 발병 위험이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생긴다.

따라서 가면 고혈압 환자들은 정상 혈압이란 판정을 받았다고 해도 방심하지 말고 가정용 혈압계로 매일 아침, 취침 전 등 정해진 시간마다 혈압을 기록해 자신의 혈압 변동을 감시해야 한다. 백의 고혈압 환자들과는 반대로 진료실 밖에선 여전히 혈압이 높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치료 필요 없는 백의 고혈압도 감시 필요=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병 없이 병원에 가도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을 보면 약간 긴장이 된다.

혈압을 잴 때 이런 증상이 유독 심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의사 앞에서 혈압만 재면 긴장이 되고 불안해져 혈압이 오르는 백의 고혈압 환자들이다.

백의 고혈압은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이 입은 흰 가운만 보면 고혈압이 유발된다고 해서 붙여진 병명이다. 의학적으로는 진찰을 받아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인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혈압이 올라가게 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백의 고혈압 환자들은 보통 병원에서 혈압을 측정하면 140/90㎜Hg 이상의 수치를 나타내지만, 일상생활 중 24시간 활동혈압을 측정해 보면 1주일 동안 평균 혈압이 130/85㎜Hg 미만으로 정상 범위 안에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백의 고혈압은 진성 고혈압이나 가면 고혈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게 중론. 의사 앞에서만 혈압이 오르고, 이는 다분히 긴장을 유발하는 병원이란 특수 환경 요인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할 것은 일단 백의 고혈압이 나타난 사람들도 향후 혈압이 올라 진성 고혈압 환자군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을지대병원 심장내과 정경태 교수는 “의사들도 혈압을 측정할 때 오진을 막기 위해 속칭 ‘백의 현상’이 개입할 가능성을 감안해야 하지만 백의 고혈압 환자들도 진성 고혈압으로 이환되지 않도록 평상시 짜고 기름진 음식 섭취, 흡연, 비만, 운동 부족 등과 같은 고혈압 위험인자를 피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