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밀려서 온 아저씨들 어느새 아내 손 꼭 잡고 있어”
입력 2011-05-15 17:58
조재현이 말하는 ‘민들레 바람 되어’ 성공 비결
배우, DMZ 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경기공연영상위원회 위원장, ‘연극열전’ 프로그래머…. 한 사람이 가진 직함치고는 지나치리만큼 많다. 조재현(46)을 인터뷰하기 전 가장 강하게 갖고 있던 의문도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혼자 다 하고 있는가’였다. 11일 서울 동숭동 연극열전 사무실에서 한 인터뷰에 동석했던 관계자는 “(조재현 프로그래머는) 요일을 쪼개 쓰고 쉬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그는 다소 부스스한 얼굴로 약속장소에 들어섰다. 아침 공연이 끝나고 인터뷰까지 시간이 빈 사이를 이용해 잠깐 잤다고 했다. ‘그 많은 일들, 어떻게 하고 있는가’부터 물었다.
“저는 제가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대학로에 놀러 나오는 거예요. 우리가 박지성한테 ‘일 잘한다’고 하지 않잖아요. ‘플레이 잘한다’고 하지. 저는 ‘워크샵 간다’는 말도 안 써요. (연극열전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직원들을 죽 휘둘러 가리키며) 저는 이 사람들도 놀러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하나를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 것 아닌가요.
“모든 걸 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라면 어려웠겠죠. 공연영상위원회 일도 그렇고 갑자기 맡았다면 안 됐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하는 일들은 이미 하던 일의 연장선상에서 동력이 생긴 거예요. 연극열전도 그렇고 ‘민들레 바람 되어’도 마찬가지고요. 연기라는 게 원래 막연한 일이에요.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거잖아요. 그런 태도가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는’ 공직에 계신 분들께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잠에 찌든 듯한 얼굴은 입을 열자마자 사라졌다. 달변이긴 하나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른 포부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단호히 ‘없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연극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는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민들레 바람 되어’의 주연을 맡고 있다. 창작극인데다 2008년 초연된 이 작품은 아내가 죽은 뒤에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평범한 은행원과 이런 남편을 지켜보는 죽은 아내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
-연극 ‘민들레 바람 되어’의 성공이 놀라운 정도인데요.
“연극의 미덕은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죠. 저는 ‘민들레 바람 되어’가 훌륭한 창작극의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연기를 하다 보면 소극장이니까 다 보이잖아요. 처음에는 50대 넘은 아저씨들이 굉장히 불만스럽게 앉아 있어요. 입이 이렇게 내려가 가지고(그는 이 대목에서 ‘입 내려간’ 권위적인 남자들을 비판하며 흉내를 내 보였다). 그런데 연극 중반 이후에는 아내와 손을 꼭 잡고 있는 걸 발견하지요. 그런 건 그 부부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일 수 있지요.”
‘민들레 바람 되어’의 흥행이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히 롱런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가 지적한 바로 그 이유, 중장년층 관객이 지속적으로 찾은 소극장 연극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연극 인구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연극열전과 ‘민들레 바람 되어’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그런데 “‘민들레 바람 되어’를 찾았던 중장년층 관객은 어쩌다 한 번 온 관객”이라는 냉정한 답변이 돌아왔다.
“‘연극열전’이 소극장 연극을 줄기차게 연작으로 만들어서 1년 동안 계속해 공연하고 히트했다는 것, 어떻게 보면 공연 역사에서 단군 이후 최초의 일이죠(웃음). 가게를 오픈하면 사람들이 와야 되잖아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긴 했는데, 계속적으로 연극을 찾는 회원으로 만드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아요. 우리도 노력을 해야 하고, 관심을 가져 주실 필요가 있지요.”
-그렇다면 내년도 ‘연극열전’에선 어떤 작품들을 볼 수 있을까요?
“중장년층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는 계속 할 거예요. 창작극은 내년에도 반드시 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연기하다 보니 구상하게 된 게 있어서, 제가 직접 쓸지 작가와 같이 할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창작에) 깊숙이 관여하게 될 것 같아요.”
그는 드라마 출연 계약을 앞두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 많은 공직 일은 어떻게 되는가? “촬영 현장에서 결재하고, 그런 거죠 뭐.”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