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없이 오는 ‘돌연사 주범’… 응급처치 중요
입력 2011-05-15 17:36
축구선수 신영록 의식불명 부른 급성 부정맥은
프로축구 신영록(24) 선수가 지난 8일 대구FC와 경기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제주 한라병원 관계자는 13일 현재 신 선수의 상태가 의식을 깨우는 작업이 필요한 단계까지 많이 좋아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의식 회복 여부를 속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프로축구 리그 중 선수가 쓰러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에선 카메룬 대표팀의 미드필더 비비엥 푀, 포르투칼 벤피카 팀의 헝가리 출신 공격수 미클로스 페헤르 등이 2003∼2004년 경기 중 잇따라 쓰러져 숨진 예가 있다. 이들은 모두 30세 이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를 겪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젊은 나이의 축구 선수가 경기 중 쓰러지는 원인은 십중팔구 심장의 이상 때문이다. 가장 흔한 게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다. 신 선수가 쓰러진 것도 부정맥 탓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화약고 터지는 것과 유사=보통 심장성 돌연사는 치명적인 원인이나 전조 증상 없이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1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의식을 잃기 직전 흉통이 있었다면 심근허혈, 심계항진(두근거림)이 있었다면 빈맥증, 호흡곤란이 있었다면 심부전증이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심장 이상에 의한 돌연사는 대부분 이 같은 전조 증상 없이 발생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부정맥에 의한 심장성 돌연사는 모든 연령층에서 올 수 있고, 남자가 여자보다 4배 정도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정맥에 의한 심장성 돌연사는 화약고가 터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화약고가 폭발하려면 화약이 쌓여 있어야 하고 여기에 불을 붙이는 불씨가 있어야 한다. 심장 근육 및 혈관의 구조적 결함은 화약이 되며 내적, 혹은 외적 스트레스는 불씨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부정맥이란 심장 박동이 정상(분당 60∼80회)보다 빠르거나, 늦거나, 고르지 않은 것을 모두 포함하는 용어다.
심장이 아주 천천히 뛰면(서맥) 신체 각 부위에서 필요한 혈액을 충분히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힘이 없고, 정신을 잃을 수 있다.
반면 지나치게 빨리 뛰어도(빈맥) 심장이 충분히 강하게 수축할 수가 없게 되므로 역시 같은 증상이 생길 수 있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도 겪게 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민필기 교수는 “심실 부위에서 부정맥이 발생하는 심실성 부정맥은 축구 경기와 같이 갑자기 땀을 많이 흘리게 될 때 전해질 이상으로 생기기 쉬워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장성 돌연사의 약 50% 정도는 이 심실성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가 주된 원인이다.
◇운동선수 위협하는 비후성 심근증=운동선수들은 대개 일반인들보다 심장근육이 튼튼하기 마련이다. 축구는 강철 같은 체력이 요구되는 대표적인 운동이다. 격렬한 몸싸움이 90분간 쉼 없이 반복된다. 그 에너지의 원동력이 심장이다.
흔히 축구 선수의 심장을 기관차의 엔진에 비유하는 이유다. 그런데 왜 일부 젊은 축구 선수들만이 심장마비 돌연사 위험에 빠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통 가족력을 보이는 비후성 심근증을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꼽는다. 비후성 심근증이란 말 그대로 심장 근육이 ‘뚱뚱해져’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는 증상이다.
고려대 안산병원 순환기내과 안정천 교수는 “비후성 심근증은 유병률이 전 인구의 약 0.2%인데, 이들 중 약 10%가 심장성 돌연사를 일으킬 우려가 높은 고(高)위험군으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극심한 심실 비대는 돌연사를 부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심한 육체적 활동 후, 훈련 중 또는 경기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일반인의 경우에도 평소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 남보다 숨이 가쁘거나 고혈압, 비만 및 당뇨 등이 있을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번이라도 운동 후나 산행 중, 또는 스트레스를 받은 뒤 가슴 부위의 통증을 느낀 경험이 있거나 호흡곤란을 느꼈다면 가까운 병원을 찾아 심장 이상 여부를 점검해 보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일단 심장마비가 발생했을 때는 주위 사람의 재빠른 응급처치가 아주 중요하다. 돌연사 발생 후 1분씩 경과할 때마다 심폐소생술에 의한 회복 가능성이 8∼10%씩 감소되기 때문이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