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상 예상했는데… 또 빗나간 ‘김중수 시그널’ 시장 갸우뚱
입력 2011-05-14 01:28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줄곧 주장한 베이비스텝(기준금리의 단계적 인상 행보)이 엉켰다. 지난해 11월 이후 진행돼온 격월 금리인상이 이달 동결로 처음 어긋난 것이다. 불투명한 안팎의 경제 변수가 동결 배경으로 꼽히지만 특별히 새로운 악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은의 결정은 시장의 기대와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유가 급락세, 저축은행 사태·부동산 정책 반영=한은 금통위는 13일 전체회의에서 이달 기준금리를 전달과 같은 3.0%로 결정했다. 여전한 물가상승세에다 김중수 총재의 단계적 금리인상론에 비춰 금통위가 이달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
김 총재가 내세운 동결 이유는 대내외 경제 악재들이다. 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금통위는 경제의 하방향에 대해 훨씬 더 세심하게 분석해야 한다”며 “대외 위험요인과 내부의 저축은행 사태 등을 고려할 때 이번에는 신중하게 가자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물가가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일부 유럽국가의 재정문제, 북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정정 불안, 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달 초부터 불거진 원자재 가격 급락사태도 베이비스텝을 잠시 멈춘 이유다. 원자재 가격 하향세가 고물가의 고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김 총재는 또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언급함으로써 최근의 금융 불안 상황을 고려했음을 내비쳤다. 이달 초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는 “특정 정책을 고려하지 않았다”면서도 “부동산이 내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속내를 비쳤다. 지난해 9월에도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를 골자로 한 8·31 부동산 정책의 영향으로 시장의 예상과 달리 금리가 동결된 바 있다. 정부의 내수 정책에 부합하는 금리 결정이 반복된 것이다.
◇시그널 불통 재발하나, 금리 정상화 더딜 듯=금융계에서는 “김 총재의 시그널이 또다시 고장 났다”는 지적이 많다. 베이비스텝이 반드시 격월 인상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김 총재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대한 우려를 수시로 피력한 상황에서 금리를 동결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동결 요인이 새롭게 나타난 것도 아니고 외부 악재는 올 초에 이미 다 나온 얘기”라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한은 이미지를 다시 각인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석원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내정자는 “친기업과 내수활성화라는 정부 정책 스탠스에 충실히 따라간 결정으로 보인다”며 “안팎의 불안요인이 없어야 금리를 올리겠다는 신호는 물가안정을 위한 선제적 대응과는 거리가 먼 자세”라고 꼬집었다.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 물가상승세 둔화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자칫 금리 정상화가 요원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2.57포인트 내린 2120.08에 마감됐으며 원·달러 환율은 1.70원 오른 1086.8원에 장을 마쳤다. 채권 값도 상승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