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지현] 세월이 선물한 것

입력 2011-05-13 17:27

평소 알고 지내던 목사님 한 분이 권사님의 입관예배를 인도한 후 유족들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십자가를 꼭 쥐고 기도하는 권사님의 손’이었다. 3일 전 병실을 방문했을 때 촬영한 사진을 자녀들에게 전해주며,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는 기도하셨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암 투병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있는 어머니와 이렇다 할 만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던 자녀들은 “추도예배 때마다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추억하겠다”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 세상에 어떤 지혜를 남길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도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된다. 육체에 생명이 깃든 시간은 그 사람의 전 존재 안에서 지극히 짧은 시간이기에 전 생애 동안 우린 어떤 기쁨을 찾았는지, 사람들에게 어떤 기쁨을 주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한 인간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다. 이 행복감은 개인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학문적 수행이 더 우수하고, 심리적으로 잘 적응하며, 실패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적다. 또 포용력, 인내심, 대화기술, 용기, 협동심, 정직 등도 건강한 가정생활을 통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행복한 가정이 갖는 경쟁력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이런 행복이 삶의 토양이 된다면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살을 에는 추위와 포효하는 돌풍, 희박한 산소 등의 악조건을 극복하며 쉼 없이 인생을 등정할 수 있는 힘은 가정에서 나온다.

우리 삶 속에는 가정이 만들어준 흔적이 가득하다. 이 흔적이 상처가 아닌 추억이 되려면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시대 부모들에게 ‘생명보험’보다 ‘감정보험’에 들라고 말해주고 싶다. 보험료는 돈이 아닌 시간으로 지불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며, 추억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쌓일수록 보장성은 커질 것이다.

삼나무는 무거운 몸무게와 얇은 뿌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뿌리가 서로 엉켜 있어 최고 90m까지 구부러지지 않고 곧게 자란다. 가족들이 삼나무처럼 서로 마주보고 격려하면 올곧게 성장할 수 있다. 세월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선물을 남긴다. 세월이 선물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가정의 행복이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